신종 바이러스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2003년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이후 최근 몇 년간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는 연례행사가 됐다. 올해도 AI가 전국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확산 속도 사상 최고에 달하면서 피해도 역대 가장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16일 시작된 이번 H5N6형 고병원성 AI로 전국적으로 닭, 오리 810만마리가 이미 살처분됐다. 추가로 156만 마리 가량 희생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달도 안 돼 1000만 마리가 처분되지만 이마저도 지금 상황일 뿐이다. 전북지역에서도 김제시와 정읍시, 고창군, 부안군에서 나타난 AI로 살처분 된 가금류는 모두 39만5600마리로 늘었다. 도내에서만 가금류 542만마리를 살처분한 2008년 사태가 재발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AI로 인한 피해는 단지 사육 농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산란계 도살로 공급이 급감하면서 국민 식품인 계란값은 지난해에 비해 80%나 폭등했다. 반면 양계 농가들이 앞다퉈 닭 처분에 나서면서 생닭 값은 이달 들어 불과 열흘만에 반 토막 났다.
탄핵 정국에 휘말린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피해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6일 첫 확진 이후 농식품부 장관의 국무회의 보고는 엿새 만에 이뤄졌고, 총리ㆍ부총리 협의회에서 AI가 여러 현안 중 하나로 언급된 것은 지난달 28일에 이르러서였다. 이런 속도감으로는 빠른 전파속도를 가진 AI를 따라잡기 어렵다. 또 농가와 지자체의 방역인식이 해이해진 점도 AI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당초 AI 확산 초기에 탄핵정국으로 인해 방역활동이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있었다.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과연 방역활동이 최선을 다한 수준으로 이뤄졌는지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AI는 이젠 전 국민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가 돼버렸다. 하지만 그 때마다 주먹구구식 대응에 그쳤다. 진화된 대비책이 없다. 방역 매뉴얼의 철저한 준수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발생 후 사후조치일 뿐이다. 예방적 조치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AI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철새의 이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마냥 철새만 탓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새는 어쩔 수 없어도 우리의 노력으로 바이러스의 이동을 통제해 확산되는 것은 막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AI가 민생경제를 파고들었다. 이번엔 AI가 먼저 왔지만 구제역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탄핵사태로 인해 정국이 요동치고는 있지만, 이런 문제야말로 대통령권한대행 체제하의 정부가 제대로 대응해야 할 사안일뿐더러 적극적으로 대처할 사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라의 토대가 튼실하지 못하고 민생이 무너지면 실패한 정권이 될 수밖에 없다. 대선을 향한 정치적 셈법에 앞서 국정만큼은 초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제 살리기와 민생안정에 정치권도 힘을 실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