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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

전북도는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 도정 운영 방향의 길잡이가 될 사자성어로 ‘절문근사(切問近思)’를 선택했다. ‘배우기를 넓게 하고 뜻한 바를 돈독히 하며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한다’는 ‘박학독지 절문근사(博學篤志 切問近思)’에 나오는 말이다. 소통과 협업을 통해 현장에서 도민과 함께하면서 도정 현안을 꼼꼼히 챙겨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이 두루 회자된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다. 여기서 ‘묵은해를 보낸다’란 단순히 ‘흘러간 세월’만을 뜻하지 않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불행한 사건이나 힘들었던 일, 혹은 마음의 짐 등을 훌훌 털어버리자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새해가 시작되면 각 기관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해의 길잡이로 삼을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미지의 새해를 시작하는 만큼 선택된 사자성어에는 한 결 같이 꿈과 희망, 포부 등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지난 2001년부터 '교수신문'은 교수들의 의견을 모아 연말 끝자락에 그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해 회자되고 있다. 연말에 선택된 사자성어는 우리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촌철살인이자, 민심 '풍향계'로 통한다. 2005년까지는 연말 사자성어만 발표하다가 2006년부터는 연초 ‘희망의 사자성어’도 함께 내놓고 있다. 연초에는 당연히 희망과 기대가 섞인 사자성어로 시작되지만 연말 사자성어는 매번 어둡고 우울한 내용으로 장식됐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연말 선정한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다.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이니, 강물은 배를 띄우지만, 강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을 지녔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교수는 "분노한 국민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재확인하며 박근혜 선장이 지휘하는 배를 흔들고 침몰시키려 한다"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연말 사자성어 2위는 176명(28.8%)의 교수들이 꼽은 '역천자망(逆天者亡)'이다. 역천자망은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한다'는 뜻이다. 113명(18.5%)의 교수들이 추천해 3위로 꼽힌 사자성어는 '노적성해(露積成海)'였다. '작은 이슬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역천자망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인물을 향한 말이라면, 노적성해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대상으로 했다. 지난해 초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인 '곶 됴코 여름 하나니'가 선정된 것과는 연말 연초가 극과 극이다.

2014년 연말엔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을 농락하고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비유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2015년에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군주에 의해 세상이 온통 어지럽다’는 의미의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지난해뿐만 아니라 사자성어 발표가 시작된 이후 연말 사자성어는 매번 어둠과 절망, 불신, 분노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시작은 항상 창대(昌大)했지만 끝은 암울했다.

지난해 끝자락은 너무나 어수선했다. 대통령과 최순실을 중심으로 벌어진 막장 드라마 같은 국정 농단 사태에 나라가 성한 데 한 곳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으로 인해 나라가 수렁에 빠진 상황은 역대 모든 사자성어를 합한 것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니 그저 안타깝고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음)’란 이런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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