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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곧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익산 영등동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얼마 전 '재심'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해서 더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살인범에게 1심 선거공판에서 징역 15년형이 선고됐다.

지난 2000년 어느 날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한 것이 뒤집혀 죄가 돼 16살의 한 소년이 범인으로 몰려 무려 10년을 복역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대와 20대 청춘을 옥살이를 하며 보내야 했던 한 청년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무려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나마 그가 누명을 벗는 데는 한 양심적인 변호사의 살신성인에 가까운 진실 규명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판부는 살인 누명을 쓴 소년이 수사기관에서 한 자백이 합리적이지 않고 신빙성도 없다고 봤다. 검찰이 제출한 다른 증거들만으로는 살인죄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기 어려워 내려진 판결이었다. 다른 증거들과 비교해보더라도 그의 범행을 쉽게 수긍할 수 없어 자백이 허위자백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확보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법언이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고 증거재판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우리 형사소송의 기본 원리이다. 형벌권의 적정한 실현이라는 형사소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실인정의 합리성이 요청되며, 사실인정의 합리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합리적이고 적정해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09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의성이 없는 자백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법은 또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 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 격언이 피고인의 인권보장을 그 이념적 기초로 하고 있다. 이는 세계인권 선언에서도 포함될 정도로 보편적인 형사 절차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주옥같은 법조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적용하는 현실에서 이를 간과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0대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0년 동안이나 억울한 옥살이로 꽃다운 청춘시절을 보낸 청년이 그 억울함을 법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거의 없다. 더욱이 온통 만신창이로 얼룩진 그의 지난 인생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우리 사법부의 부끄럽고 치욕적인 유산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법이 공평무사하고 살아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법의 잣대가 공명정대하다면 시궁창에 썩어 고여 있는 우리 정치권도 한결 맑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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