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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가 살아야 역사가 산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0여일 남짓해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을 위한 정책들이 하나 둘 시동을 걸고 있다.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사드 배치와 함께 국정역사교과서 폐지 문제다. 사드 배치 문제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사실상 주권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남의 나라 땅에서 미국과 중국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는 격이다. 사드 배치는 힘없는 남의 나라 땅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와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취임 후 두 번째 업무지시로 중·고교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했다. 이윽고 지난 달 31일 국정 역사교과서가 공식 폐지되는 상황을 맞았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가 44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는 숱한 논란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걸 두고 역사적인 해프닝 이라고 해야 하나.

국정역사교과서 논란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에드워드 카 교수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가 왜곡된 거짓 역사를 배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욱이 학교가 제 입맛대로 해석한 좌와 우 이념 갈등의 희생양이 되어서야 말이 되겠는가.

한 나라의 역사가 권력자들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우리의 천박하고 몰지각한 역사관에 아연질색 할 따름이다. 이런 역사관으로 허구한 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백날 외쳐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통치자들의 역사관이 이 지경이니 일본인들이 툭 하면 독도가 제 나라 땅이라고 우겨대고 있지 않겠는가.

역사교과서에 대한 공은 이제 문재인 정부로 넘어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중·고교 역사교과서의 새로운 집필기준을 만들어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 기구였던 ‘역사와 미래위원회’가 보고서 ‘미래를 향한 역사 정책 3대 과제’에 이런 내용을 담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제출한다는 것이다.

정당이 역사교과서 집필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낸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교육부가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뿐이라지만 과연 집권여당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정부 관료가 몇이나 될 것인가. 결국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워 집권 여당 입맛에 맞는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뜻은 아닌 지 시작부터 우려가 앞선다. 만약 그렇다면 박근혜정부가 실패한 국정교과서 전철을 답습하겠다는 것이나 진배없다. 민주당은 과거 잘못된 역사교육을 균형 있게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2015년 11월 검인정인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바꿀 때의 논리와 판박이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란다. 역사 교육에는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 편향성이 개입돼선 안 된다. 만에 하나 민주당이 ‘문재인식 역사교과서’를 만들 의도를 가졌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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