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기업 가운데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국연금관리공단이다. 진앙은 엉망진창 인사(人事)다. 지난 17일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이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문형표 전 이사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구속된 뒤 현재까지 공석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4월 말 기준 운용자산은 자그마치 578조원이다. 천문학적인 단위라 체감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578조원은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1117만원을 나눠줄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다. 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는 이미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다. 2022년이 되면 1000조원 시대가 열린다.
국민연금공단은 엄청난 규모의 운용자산 덕에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기관투자업계의 ‘큰손’으로 불린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굴리는 곳이다 보니 모시는 시어머니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인사권자는 ‘자기 사람’ 심기에 혈안이 돼 있다. 여타 공기업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이 유독 심하다. 그만큼 떡고물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재벌과 권력의 사금고’로 전락했다는 비난에 직면한 상태다. 하긴 재벌과 권력의 사금고로 전락했다는 얘기는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중책 자리임에도 불구 그동안 ‘권력의 하수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연금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지난 20일 국민연금공단 신임 이사장이 갖춰야 할 ‘5대 자격기준’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조는 이날 전체 조합원 현장토론을 거쳐 ‘신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5대 자격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노조가 밝힌 ‘신임 이사장 5대 자격기준’은 국민연금 무(無)경력자가 아닌 제도와 기금을 아우를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인사, 공적연금 강화 철학, 기금운용의 투명성 공공성을 견지할 수 있는 사람, 부당한 개입에 맞서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공단운영이 가능한 인사, 노동기본권을 이해하고 공단 구성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사다. 노조의 주장을 역으로 해석하면 그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선임이 얼마나 원칙 없이 이뤄지고 있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노조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청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은 금융이 지배하는 시대다. 전북은 LH를 경남 진주에 빼앗기고 가져온 게 국민연금공단이다. 현재 전북은 금융타운, 더 나아가 금융도시 조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국민연금공단이 있다. LH를 진주에 빼앗겼다고 도민들은 공분했지만, 먼 미래를 본다면 국민연금공단이 창출해 낼 부가가치는 LH에 비할 바가 아니다. 노조의 주장대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제대로 선임하는 것이 국민연금 신뢰회복과 적폐청산의 출발점이다. 국민연금 제도와 기금운용에 대한 이해가 깊고, 공공성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