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대법원장 후보 추천 투표가 갖는 의미

법원노조 전주지부가 내달 25일 대법원장 임명을 앞두고 후보 추천을 위한 총투표에 돌입했다. 전주지부는 판사를 포함해 직원 등 500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투표는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법원직원들이 솔선수범해서 동참하고자하는 취지로 마련됐다는 게 전주지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서 법원노조는 차기 대법원장에 대한 전국 법원구성원들의 공론을 모으기로 하고 총투표를 준비해왔다. 사법개혁이 요구가 높은 만큼 구성원들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법원노조는 이번 투표 결과를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현행 대법원장은 법에 정해진 별도의 추천이나 제청 절차 없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우리 사법 역사에서는 기억해야 할 대법원장이 있다.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다. 항상 후배 법관들에게 청렴과 강직을 강조한 그는 평생을 소신 있는 법관, 강직한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철저히 지켰으며, 오늘날 가장 추앙받는 법조인으로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거듭되는 재판 간섭에 꼬장꼬장하게 맞서 정부 수립 전후 취약했던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냈다. 그러나 그가 힘겹게 쌓은 사법 독립의 초석은 정치권력의 압박에 금세 흐트러졌다. 2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은 친정부 성향으로 치달았다. 사법의 암흑기는 오래갔다.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따 붙인 속칭 ‘정찰제 판결’이 이어졌다. 대법원판사회의가 행사하던 인사 등 사법행정권도 5·16 쿠데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넘겨지더니, 1972년 유신헌법부터는 대법원장에게 그대로 집중됐다. 내부 독재화하기 쉬운 1인 집중구조에선 한 사람만 지배하면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 정치권력의 사법부 통제에 가장 유용한 제도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폭압적인 정치권력 앞에서는 헌법도 소용없고 법치주의도 소용없다는 걸 내 눈으로 봤다”는 그 시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금도 판결은 권력의 바람에 휘둘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0년 대법원은 긴급조치를 위헌으로 봤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겐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고 뒤집었다. 과거사 사건의 국가배상 소멸시효를 6개월로 줄이고,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핵심 증거를 별 이유 없이 배척한 것도 지금의 대법원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된 사법권력이 외압의 보호벽이 되기는커녕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내부 통제장치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이미 무성하다. 인사 등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논의는 그 연장이다. 70년 넘게 이어져온 엘리트 법관들의 폐쇄적 ‘관료 사법’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사적으로도 영원히 임명제였던 것은 없었다. 입법부의 핵심인 국회의원조차 대통령이 임명한 역사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검찰총장과 대법원장 등 각부 수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나라들이 많다. 미국에서는 지방 판사를 유권자들이 직접 선출하기도 한다. 불변의 원칙 같은 것은 없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