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국제기구의 두드러진 활동 가운데 ‘지정 마케팅’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달 초 FAO(UN식량농업기구) 과학자문그룹 일행이 경남 하동 전통차밭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현장실사를 벌인 일이 있었다. 하동 전통차 농업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여부를 가늠하기 위한 실사였다. 이번 현장실사는 하동 전통차농업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마지막 절차로 내달 로마에서 열리는 제4차 FAO 과학자문그룹 정기회의에서 윤곽이 나오고 이르면 연말 최종 등재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세계중요농업유산 지정 사업은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됐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 3개 대륙 15개국에서 모두 36곳이 등재돼 있다. 우리나라는 각 지자체가 추천한 64건의 대상지를 검토 FAO에 지정 신청을 했고, 이중 제주도 돌담밭과 완도군 청산도 구들장논 등 2곳이 지정됐다. 하동 야생차농업과 함께 금산 인삼농업, 제주해녀어업, 담양대나무밭 등도 등재를 추진 중이다. 차(茶)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푸얼 전통차 농업, 재스민과 차문화, 일본의 시즈오카 차농업 등 3곳이 올라 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지역사회 사람들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열망 의지, 자연 환경과 함께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토지 이용 체계와 생태 경관 정도로 정의될 수 있다. 생물 다양성, 토지 이용 체계, 경관이라는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지역을 국가가 추천하면 FAO의 심사와 실사 과정 등을 통해 지정된다.
세계중요농업유산 전 단계로 ‘국가중요농업유산’도 있다. 국가중요농업유산은 현재 전남 3곳, 제주, 경남, 경북, 충남 1곳 등 총 일곱 곳이 있다. 그러나 농도임을 내세우는 전북은 안타깝게도 단 1곳도 없다. 2년 전 전북도는 김제 벽골제와 진안 마을숲을 신청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전북도는 올해 다시 완주 생강토굴과 부안 양잠농업을 신청할 계획이다. 전북지역 농업 관련 등록문화재는 모두 81개. 하지만 세계유산은커녕 국가유산마저 없다 보니 농도 전북의 입지는 물론 부가가치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김제 벽골제가 농업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벽골제는 산업의 중심이 농업생산에 있었던 근대 이전의 전통 농경사회에서 치수 기능을 위한 고대수리시설로서 1700여년의 농경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벽골제는 우리나라 농경사회에서 중심을 이루는 도작(稻作)문화에서 비중이 가장 큰 유산이다. 농업생산량은 왕조나 통치철학의 교체 등에 영향을 미칠 만큼 국가경영의 차원에서 유지·관리돼야 했으며, 농업생산량과 가장 관련이 높은 요소는 치수였다. 그런 벽골제가 세계중요농업유산은 물론 국가중요농업유산에마저 누락되고 있다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김제 벽골제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오랜 기간 일구어온 우리나라의 소중한 농업유산으로 국가 차원에서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자원으로 손색이 없다. 농도 전북의 다양한 농업자원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를 발굴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