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는 범위가 넓다. 땅이 넓은 것은 아닌데 우리가 그려내지 못하는 역사가 넓다는 것이다. 가야는 이름도 많고 6가야니 12가야니 하면서 그 이름 또한 정확히 정리돼 있지도 않다. 사실 가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근 600년간 지속된 오랜 역사를 간직했고, 5개 시·도 20개 기초지자체에 걸친 광범위한 영역이다. 백제·신라와 달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소국연합이라는 특성 때문에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기록도 매우 적어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그간 고고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가야가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대 제국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역사에서 전설로 다시 쇠락하는 듯하던 가야사(史)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역사의 영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가야사 연구ㆍ복원을 통한 영·호남 화합과 발전”을 언급하면서 두 지역에서 가야사 연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6월 초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를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시켜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이후 영호남 지자체들은 각종 사업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전북도 역시 가야사 연구·복원을 위한 전담반을 만들고 봉수대, 산성, 제철 유적 등 복원 대상 가야 유적 674곳을 정했다. 이 중 271곳을 전략사업으로 선정해 향후 8538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발굴·복원 뒤에는 장수 가야 왕궁터, 가야문화체험관 등 관광자원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종진 문화재청장도 지난 8일 진안 성수 도통리 초기 청자가마터를 비롯해 장수 장계 삼봉리 가야 고분군, 남원 아영 두락리 고분 등 주요 유적 발굴현장을 둘러본 뒤 유적의 조사?정비 방안과 국가 문화재 지정 등을 논의했다.
지금까지 막대한 비용 때문에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하던 가야사 관련 사업 계획들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 이후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가야사 복원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돼 새로운 기로에 서게 된 셈이 됐다. 영·호남 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두 지역의 화합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확한 고증이 동반되지 않은 섣부른 준비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야 유적 조사와 복원에서 속도전이나 전시행정과 같은 그릇된 인식과 방법에 의해 졸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극력 배제돼야 한다. 가야사가 관광을 위한 개발의 대상이나 국비를 따내기 위한 소재로만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체계적인 가야사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가야사 연구 복원을 위한 호·영남간의 국비확보 경쟁은 오히려 두 지역 간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고, 중구난방식의 복원사업은 예산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가야사 복원이 뜬금없는 사업이 되지 않으려면 초기인 지금 단계에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충분한 연구·조사 없이 유적지 몇 곳을 깔끔하게 단장한다고 가야가 되돌아오는 건 아니다. 지금처럼 개발 경쟁만 난무해서는 가야사 복원사업이 가야처럼 멸망할 수도 있다는 한 연구자의 말을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