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교육정책 혁명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십년대계’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빗대 ‘백년대계(百年大計)라 쓰고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읽는다’고 꼬집었다.





지난 참여정부시절 5년간만 해도 6명의 교육부장관이 경질됐다. 소임을 맡은 교육수장은 과연 자신 있는 교육정책을 수립해 실천에 옮겼을까. 대학입시제도는 또 어떠했는가.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지금까지 68년간 ‘단독시험→연합고사→내신제→국가고사→또 단독시험→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고사’ 등으로 교육정책이 8회나 바뀌었으니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이쯤 되면 백년대계가 아니라 십년대계도 되지 못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아마 독자들은 자기의 대학입시 때를 이에 맞춰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교육정책 여하에 희생양이 된 독자도 분명 많을 것이라고 본다.





시대를 잘 맞춰 태어나야 나에게 맞는 교육이 된다는 말이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즉 자기의 실력이 아니라 교육계획에 의해 때가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해는 실력으로, 어느 해는 추첨으로, 또 어느 해는 무시험으로 정책여하에 따라 입학이 결정되곤 했다. 역시 때가 맞으면 무시험으로 입학이 되고 때가 맞지 않으면 국가고사, 입학고사, 예비고사, 수능고사 등 첩첩중산을 넘어야 희망하는 대학에 논술이나 실기를 볼 수 있다. 도대체 교육대계가 ‘실력의 잣대’냐 ‘인물의 잣대냐’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는 수능 9등급제를 실시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선택형 수능제도와 입학사정 관제를 확대했고, 박근혜 정부는 대입제도 간소화와 국사 수능필수화, 영어 절대 평가제를 도입했다. 대입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길을 찾지 못하고 땜질 처방의 임시요법을 사용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달됐다. 대학입시라는 게 전년과 같은 적이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손을 댄다. 그 통에 학생들과 학부모들만 죽어난다. 교육은 ‘과거의 사람이 과거의 방식으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게 교육의 숙명적 한계다. 근본적인 변화는 없고, 변화하려는 의지도 없다. 21세기 미래의 고뇌도 성찰도 부족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을 둘러싸고 또 다시 논란이 한창이다. 교육당국은 지난달 발표했던 수능개편 시안을 모두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치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을 1년 유예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가 민감한 수능 개편안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해 파장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대학입시라는 게 워낙 민감한 사안인지라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찬반양론은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교육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관료들이다. 관료는 변하지 않는다. 기존의 방식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육은 권력이고 기득권의 방벽이다. 통제와 길들이기에만 몰두한다. 교육철학보다 교육공학에만 몰두한다. 이러다가 우리나라 교육은 공멸한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