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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다

지난 9일은 세종 대왕이 이 땅에 한글을 반포한 지 571돌째 되는 날이다. 올 한글날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의례적 기념식만을 치른 채 지나쳐 버렸다. ‘인류가 쌓은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요 ‘가장 과학적으로 창제된 문자’라는 국제적 칭송도 민망하게 우리의 ‘훈민정음’이 이 땅에서만은 철저히 도외시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문맹퇴치를 위해 가장 현격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 바로 ‘세종대왕상’인데도 말이다.





한글은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고,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기둥 역할을 했다. 한글은 독창성과 과학성에서 모두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평가된다.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로부터 지난 197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문화의 시대와 지식정보화사회를 주장하면서도 그 근간이 될 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아니 개탄해마지 않을 일이다.





글의 창제는 나라를 세우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한글날이 3.1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에 못지않게 의미 있는 날이면서 과거 국경일에서 빠지게 된 것은 노태우 정부 시절 세계 어느 곳에도 이와 같은 기념일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였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자기 말이 있음에도 그것을 표현할 문자를 갖지 못해 영어 알파벳을 빌려다 쓰는 궁색한 처지를 면하지 못한 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 수 있다. 한글은 불과 24개의 낱자를 써서 한국인이 내는 거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과학적이고 편리한 글자다. 한글의 탄생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의 한 저명 교수가 한글날을 ‘세계인 모두가 축하해야 할 날’이라고 역설한 것도 허튼 수사가 아닌 것이다.





우리민족에게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한글 이전에 주 글자로 사용하던 것은 한자다. 이 한자를 지속적으로 사용했다면 현재의 우리나라 모습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경우 한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과거 중국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가 문맹률 퇴치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중국정부는 문맹률 극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지만 전체 인구 중 15% 이상이 문맹자다. 중국이 세계에서 무서운 나라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만약 중국이 이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와 같은 쉬운 한글을 사용했더라면 아마도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을 법한 일이다. 이것만 놓고 보아도 한글창제의 중요성과 한글의 미래 문화적 부가가치는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민족을 지키고 역사를 가꾸어온 말과 글이야말로 문화창조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시대, 우리의 문화를 담아낼 그릇이 더 이상 버린 자식 취급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한글날을 그저 생일잔칫상 하루 잘 차려먹는 날쯤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이 겨레문화의 꽃을 어떻게 하면 풍요롭고 품위 있게 키워나갈 것인지 다같이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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