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기업은 그 지역 경제의 근간이자 주춧돌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은 해당 지역의 브랜드 역할을 한다. 외지자본이 향토기업을 인수한다고 그리 큰 피해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지역경제에 미치는 직·간접적 효과를 따질 때 적잖은 차이가 있다. 고향에 뿌리를 둔 기업은 아무래도 지역사회에 대해 느끼는 책무나 애착이 남다를 수 있다.
최근 계속된 불경기로 전북의 향토기업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이러다가는 향토기업의 씨가 마르는 것 아니냐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전국대비 제조업 기반이 2~3%에 불과한 취약한 상태에서 전북을 대표하는 알짜기업마저 붕괴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북에는 그동안 건설과 금융, 제조, 유통 등의 분야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간판 기업들이 전북의 명성을 대외에 알렸다. 수십 개에 육박했던 이들 기업은 전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수도권 기업들과 어깨를 당당히 겨루며 전북의 자랑으로 우뚝 서 왔다. 하지만 90년대 말 건설업이 정점을 찍은 후 하방의 길을 걸으며 지역업체도 점차 시련을 계절을 맞았고, 2000년대 이후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의 지역시장 점령으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시계를 과거로 되돌려본다면, 전북의 대표적 토종 서점인 전주시 경원동 민중서관 본점은 지난 2011년 경영난을 견뎌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40년 넘게 전북도민의 사랑을 받아온 민중서관은 인근 고사동에 교보문구 전주점이 도내 최대 규모로 들어서면서 간판을 접었다. 도내 유일의 향토백화점인 전주코아백화점도 수도권 유통업체에 매각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 연간 1천5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전북의 대표적 향토백화점으로 승승장구했던 코아백화점은 2004년 롯데백화점 전주점이 들어서면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왔다. 전주시내 서민금융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전일상호저축은행도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건설업체의 사정은 더욱 나빠 거의 몰락 지경에 빠졌다. 국내 중견 건설업체였던 성원건설과 엘드건설, 광진건설, 서호건설 등이 기억의 저편으로 물러났다.
최근 들어서는 전북에 뿌리를 둔 기업들의 몰락이 마치 도미노 현상을 연상시키듯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익산지역 태양광 업체인 넥솔론의 가동 중단에 이어 1990년대 전주의 대표적 기업인 BYC 전주공장이 폐쇄를 결정했다. 현대조선소와 함께 군산 경제의 버팀목인 한국GM도 수년째 철수설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완주군 용진읍 하이트진로 전주공장 역시 현재 매각설에 휩싸이면서 경영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전북경제의 주춧돌인 이들 업체의 존립 위기로 지역 경제기반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괜한 소리가 아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외부기업 유치와 창업기업에 대한 지원에 있어서는 획기적이고 폭넓은 지원책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기존 향토기업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치는 꼴이 되면 지역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오지도 않는 신성장 기업 유치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온 전통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내 자치단체들의 기업정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