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 논란 끝내자

지자체간 이견으로 13년간 난항을 겪어오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이 관련 지자체들의 합의 건의문이 문체부에 전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것 같다.





전주·정읍·고창·부안 4개 지자체장들은 최근 국가기념일 제정 건의문에 동의하고 지역 색을 띠지 않으면서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할 수 있는 날로 제정할 경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건의문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이번 건의문은 지난 7월 ‘백산대회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주장해 보류됐던 부안군의 조건부 합의로 이뤄졌다. 기념일제정추진위원회는 지난 5월 회의를 통해 ‘전주화약일’을 기념일로 지정하고자 했지만 지자체의 반대로 정부 제정 건의를 미뤄왔다.





그간 각 지자체들은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과 관련해 각각 관내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사건을 기념일로 제정키 위해 건의안 채택과 청원운동을 벌여왔다. 전주는 휴전화약이 성립됨으로써 제1차 농민전쟁이 종결된 전주화약(全州和約)일인 6월 11일을 기념일로 주장했고, 정읍은 황토현전승일 5월 11일과 고부봉기일 2월 15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된 3월 5일을 주장하며 건의안 채택과 청원운동을 벌였다. 또 고창은 무장기포일 4월 25일, 2차 삼례봉기일 11월 11일, 집강소 설치일 8월 8일을 건의안으로, 부안은 백산대회일 5월 1일(음력 1894년 3월 26일)을 주장했다.





40여개의 국가기념일이 기려지고 있지만 동학농민혁명의 경우처럼 기념일 날짜를 놓고 이리 오랫동안 대립과 갈등을 빚은 사례는 없었다. 숭고한 혁명의 정신을 기리자는 것인지, 지역 낯내기를 하자는 것인지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학농민혁명에 담긴 나눔과 배려· 협동·상생 정신은 오간데 없이 기념일을 두고 지역주의만 앞세웠다. 관련 단체와 자치단체들이 본질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주장만이 옳다고 우격다짐을 해왔다.





동학농민혁명 특별법 제정 이후 10년 넘게 기념일 제정이 추진됐으나 번번이 지역주의에 가로막혀 늘 제자리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갈등만 키워 기념일 제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해 전주화약일의 기념일 시도를 끝으로 한동안 공식적인 논의조차 실종됐다.





동학농민혁명은 사실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변화시키고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을미의병활동,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지평을 연 근대 민족사의 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혁명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기념일 제정 등의 중요한 문제를 제 앞에 큰 감 놓겠다고 티격태격하는 꼴은 남 보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은 결코 특정 지역이나 특정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다. 특정 단체나 지역의 반발이 무서워서 미봉책으로 기념일을 제정해서야 되겠는가. 어려울수록 정도를 가야하고, 정공법을 택해야 함이 마땅하다. 이제라도 기념일 지정에 의견을 모았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기념일 지정은 미완의 혁명을 완성된 혁명으로 승화시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