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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식 학술용역 수의계약 남발

지자체의 ‘안 되면 말고’식 용역 남발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다지 필요치 않은 용역을 실시하는가 하면 재탕 삼탕의 비슷한 용역 발주도 예사다. 정책 수립에 전문성을 요구하는 연구용역의 필요성이야 인정하지만 이를 핑계로 마구잡이로 발주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용역 공화국’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학술용역 수의계약 문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북도의회 허남주 의원은 전북도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올해 발주된 24건의 학술용역 가운데 18건(75%)이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며 “작년 역시 38건 중 25건(66%)이 수의계약으로 진행되는 등 투명성이 의심되고 행정신뢰가 추락한다”고 지적했다.





허 의원은 “일반경쟁을 피한 수의계약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로 업체와 유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특히 일부 용역은 하반기 이후에 늑장 발주하는 바람에 납품이 늦어지는가 하면 시간에 쫓겨 부실한 결과를 도출해 해당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측근들과 비선 실세들이 계약을 통한 이권을 노리고 접근하기 때문에 수의계약이 항상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지자체의 용역 남발 악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용역을 향후 사업 결과를 두고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 이런 구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이 직접 할 수 있는 업무까지도 무작정 외부에 맡기고 난 뒤 ‘안 되면 말고’식으로 흐지부지 끝나는 게 다반사다. 이는 결국 세금 낭비로 이어질 뿐 아니라 정책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보신주의’만 더 팽배하게 할 뿐이다.





이러고도 지자체들이 책임행정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몇 년 전 전북의 한 시민단체가 도내 6개 시 지역 지자체의 학술용역 실태에 대해 정보공개를 신청해 분석한 결과 이들 지자체가 발주한 학술연구용역의 76%가 수의계약으로 발주됐고, 이중 90% 가까이는 아예 외부에 공개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도내 ‘씽크탱크’를 자처하는 한 연구기관 연구원의 논문이 중복·표절의혹이 짙다는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다. 연구의 생명은 진실성과 창의성인데도 기존 연구 성과를 베끼고, 표절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지자체의 무분별한 학술 연구 용역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행정안전부는 지난 9월 적격심사 세부기준을 마련해 공포했다. 지자체별로 상이한 기준을 통일해 보다 투명한 발주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만으로 용역 남발 관행이 차단될지는 의문이다. 엉뚱한 용역에 따른 세금 낭비 등에 대한 사후점검 대책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후점검 결과 발주에 문제가 있을 경우 엄정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 또한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사업추진을 위한 학술용역은 향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사업의 방향을 정한다는 측면에서도 다양성과 객관성이 요구된다. 이 기회에 관행적인 수의계약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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