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우선인가, 아니면 ‘태아의 생명’이 더 중요한 것인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인 ‘낙태죄 폐지’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는 물론 종교계까지 낙태 문제에 저마다의 입장을 내놓고 집단행동까지 나서면서 국론이 사분오열 양상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대해 그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내년 임신중절 실태 조사 실시, 남성과 국가의 책임 고려’ 등을 골자로 하는 공식 답변을 하면서부터이다. 조 수석의 답변은 청와대 입장 전달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폐지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파급력이 예사롭지 않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죄를 묻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있고 의견들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임신중절 실태를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이미 23만명이 넘는 인원이 ‘낙태죄 폐지’에 서명했다.
반면, 천주교는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천주교계 주요 인사와 주한 외교 사절들까지 다수 참석했다. 천주교계는 지난 1992년 낙태허용 형법 개정이 논의되던 시기에도 이에 반대하는 100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했다.
우리나라는 낙태 부분 허용국이다. 유전적으로 장애나 질환이 있는 경우나 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 산모 건강을 해치는 경우에 한해 허용한다. 그 외의 낙태는 불법이다.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논란의 핵심은 바로 ‘여성에게만 가혹하다’는 처벌 부분이다.
선진국도 이 문제를 놓고 사회적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1970년 수 천명의 시위대가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자, 가톨릭계 병원들이 이에 반발하며 낙태 허용 시 병원을 폐업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2009년에는 낙태를 옹호하는 의사가 반대론자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수많은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과, 범죄로 취급되는 낙태로 인해 지금도 고통 받고 있다. 원치 않는 출산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태어나는 아이와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출산율이 줄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쉽게 답변을 내놓을 수는 없을 듯싶다. 쉽게 결정하기엔 너무나 사안이 중대하다. 낙태 논쟁이 오래 계속된 만큼 이번에는 종전의 가치들만 내세워 다시 충돌할 게 아니라 현실적 해법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법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과 의료인들 입장에서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합리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