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평준화가 실시된 이후 역대 정부는 고등학교 운영체제의 다양화를 통해 획일성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수한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 방안을 모색해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처음 만든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자율형 공립 고등학교, 자율학교, 마이스터 고등학교 등이 이런 정책의 결과물이다.
교육부는 지난 달 2일 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의 우선선발권이 2019학년도부터 폐지한다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았다. 중학교 2학년이 고교 입시를 치르는 2019학년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와 일반고가 동시에 입시를 실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자사고 등이 일반고에 앞서 학생을 선발하는 이른바 ‘우선선발권’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교육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자사고·외고의 해당 학교 및 학부모들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이 이들 학교의 폐지를 촉구하는 연합 시민단체를 출범시키는 등 폐지 찬반 양측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폐지 찬성 측은 자사고·외고가 명문대 진학의 통로 역할만 하면서 고교 서열화를 부추기고 공교육을 황폐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오히려 일반고 간의 심각한 학력 격차와 학교 서열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고 자사고·외고의 일방적 폐지로 학생과 학부모들만 혼란과 피해를 안게 된다며 반박하고 있다.
일부 자사고와 외고의 경우 지나친 사교육을 유발하거나 입시학원처럼 운영돼 개선이 필요한 측면이 없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처하려면 주입식 교육 아닌 새로운 교육을 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사고의 전신인 자립형사립고는 고교평준화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도입된 제도다. 1998년 이해찬 초대 교육부 장관은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대학 무시험전형을 확대했지만 ‘단군 이래 최저 학력(學力)’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대치동 학원가를 키우는 후폭풍을 일으켰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EBS-수능 연계 등 사교육비 경감 대책 결과 학생들은 내신, 수능, 논술에 모두 대비해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겪어야 했다.
자사고·외고의 문제는 고쳐야 하지만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는 것은 현명한 백년대계라고 하기 어렵다. 세계가 인재 경쟁에 몰두하는 마당에 어느 정도 정착된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고 평등 교육으로 선회하겠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 고교의 폐지는 단순히 일반고로 전환하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개혁문제와 맞닿아 있다. 대학입시와 사회는 아직도 학벌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학벌중심 사회를 그대로 둔 채 고교 제도를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교육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혼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와 학교현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교육개혁을 주문한다.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