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이란 멈춤이 없다. 억겁의 세월동안 도돌이표처럼 그래왔듯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처음부터 끝간데 모를 곳으로 흘러갈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년(年), 월(月), 일(日), 시(時)로 구분해 그 일정을 소중히 함은 마음을 새로이 하고 각오를 다지기 위함이라고 여겨진다.
인간에게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큰 의미다. 새로운 힘이요 축복이다. 365일에 한번. 매듭을 짓고 새 출발할 수 있도록 인간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털어버릴 것은 털고, 새로운 각오로 발전을 더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죽는 순간까지 한 순간이라도 흐트러짐 없이 자기 인생을 살아야 그 인생의 연륜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는 그의 시(詩)에서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 했다. ‘사람은 죽고 난 뒤에야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생은 태어남의 의미보다 죽음의 의미가 더 큼이 아니겠는가.
한 해가 마무리되거나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이 되면 각 자치단체나 공공기관, 기업체 등은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를 마치 통과의례처럼 발표한다. ‘사자성어’ 네 글자로 함축해 인간과 사회의 적나라한 속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해의 각오와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전북도는 2018년 사자성어를 반구십리(半九十里)로 정했다. 반구십리는 시경에 나오는 ‘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라는 귀절의 한 부분이다. 백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리를 반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한 만큼 일을 완전히 끝마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반구십리’는 마무리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2018년은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는 해로써 후백제 왕도, 전라감영 등 천년을 이어 온 소중한 역사의 자부심을, 전북 몫 찾기의 뜨거웠던 기세를 몰아 ‘전북 자존의 시대’를 열어 나가자는 뜻도 담고 있다.
근래 발표되는 사자성어 중 가장 권위 있는 것은 교수신문이 선정하는 한자어다. 이 신문이 2001년부터 한 해를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 등을 선정해 발표하자 국민들은 촌철살인이라며 무릎을 쳤다. 그러자 교수신문은 2006년부터 연말용 외에 새해용 사자성어도 따로 선정했다.
교수신문은 지난 해 연말 한 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꼽았다. 성난 민심이 어리석은 군주가 탄 배를 뒤집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군주민수’라는 사자성어는 당시의 나라 형국과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다. 나라의 바탕이요, 근본인 국민을 이길 수 있는 권력은 없다. 그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뜻에 맞는 정치를 펼쳐나가야 그들이 편안해지고 나라가 번성함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다.
연말연초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경구를 주고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언중(言衆)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현학적 수사는 소모적인 말장난에 그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