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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천사'의 선행 시대의 등불로 삼자

해마다 연말이면 익명의 기부자들이 나타나 어둠 속의 세상을 환히 밝힌다. 이른바 ‘얼굴 없는 천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각박해진 세태라고들 하지만 이들의 선행은 세상이 아직은 메마르지 않았으며 공감과 나눔과 연대로써 얼마든지 삶의 희망을 키워갈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먹고산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한 해를 매듭짓는 세밑에 서면 비로소 자신과 이웃이 보인다. 그래서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을 찾는 발길이 줄을 잇는다.





전주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와 희망과 감동의 빛을 전했다.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는 주민센터 뒤 천사쉼터 나무 아래에 A4용지 박스 한 개와 빨간색 돼지 저금통 한 개를 놓고 홀연히 떠났다. 박스 안에서 나온 돈은 6천27만9천210원. 박스 안쪽에는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든 한해 보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년에는 더 좋아질 꺼라 생각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여느 해와 똑같이 어떠한 조건도 없었다. 이로써 2000년부터 시작된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액은 총 5억5천813만8천710원으로 불어났다. 그의 후원금 덕분에 전주 시내 4000여 가정이 보살핌을 받았다.





얼굴 없는 천사의 18년간 선행은 숱한 조명을 받으며 ‘선행의 전설’로 굳어졌다. 노송동 주민들은 천사의 뜻을 기리고,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하고, 불우이웃을 돕는 나눔과 봉사 활동도 펼치고 있다.





지난 2010년 1월에는 천사의 숨은 뜻을 기리고 아름다운 기부문화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얼굴 없는 천사의 비’를 세우기도 했다. 천사가 기부금을 두고 가던 장소는 기부천사쉼터로 꾸몄다. 전주시도 아중로에서 전주제일고 정문에 이르는 260여m 구간을 ‘천사의 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거리 담장에 아트 타일을 활용한 기억의 벽이 조성돼 얼굴 없는 천사와 나눔의 이미지를 담을 예정이다.





천사 이야기는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14년 연극 ‘천사는 바이러스’가 무대에 올려졌고, 2015년 김성준 감독이 같은 제목의 장편영화를 만들어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다. 해마다 이어진 천사의 선행은 전국에 익명의 기부자들이 늘어나게 하는 ‘천사효과’로까지 이어졌다. 어려운 이웃들을 후원하는 각종 복지사업이나 기부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지 않고 참여하는 등 전국에 수많은 ‘얼굴 없는 천사’를 낳았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눠주는 마음은 분명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들 천사들의 선행을 바라보며 박수만 치고 만다면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것이다. 촛불은 방을 잠시 환하게 밝힐 순 있으나 내내 따뜻하게 덥히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우리 사회는 날로 커지는 빈부격차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행복한 이웃이 줄어드는 대신 불행한 이웃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연말 기부천사들의 선행을 이런 시대상에 대한 경종이자 등불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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