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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얼마 전 익산시청 한 고위 공무원이 과로로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동료 공무원들은 숨진 국장은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한 체질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굵직한 현안업무를 추진하며 피로누적 등 건강악화를 토로해왔다고 한다. 피로 누적으로 쓰러진 당일이 공휴일임에도 예산 확보를 위한 업무를 챙기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 ‘과로사회’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족과 사생활은 뒷전이고, 야근을 밥 먹듯 하며 회사에 ‘충성’하는 직원들을 칭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누가 뭐래도 여전히 과로 사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장시간 노동 관행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OECD 최장 노동시간 속에서 집배원 과로사와 자살, 또 화물자동차 및 고속버스의 대형 교통사고 등 과로사회가 빚어낸 참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고용률이 70%를 넘는 국가 중에 연간 노동시간이 1800시간을 넘는 나라가 없다”고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평균 근로시간은 2069시간이다. OECD 국가 평균 노동시간인 1763시간보다 306시간이나 긴 셈이다. 지난해에는 게임 개발자들이 새로운 게임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 모드’에 들어가면서 줄줄이 과로사하고 집배원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으면 ‘과로사회’라는 오명을 버리기가 쉽지 않게 됐고, 이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은 올해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하루에 13시간 이상 일을 할 경우 뇌출혈 발생 위험이 94%나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장시간 근무 외에도 낮과 밤이 자주 바뀌는 교대 근무도 우리 몸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한다. 고혈압과 같은 지병이 없었더라도 장시간 근무나 교대 근무는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발생시켜 혈관벽을 손상시킨다고 한다. 주당 52시간 넘게 일하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두 배 이상 늘어나고, 직장인 3명 중 1명은 과로사 위험에 처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야근과 격무에 노출된 우리 사회는 이렇게 누군가의 건강을 담보를 잡는 경우가 많다.





노동시간 단축 방안은 지난 2013년부터 줄기차게 논의돼 왔지만 시행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노사정 이견으로 번번이 입법이 무산됐다. 과로는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의 행복과 직결된다. 현재 근로시간 감축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고, 보수 야당도 반대하고 있어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물론, OECD 가입국 중 노동시간이 제일 길고, 야근이 빈번한 국가로 손꼽힌다고 해서 무조건 사회 탓으로 돌리긴 힘들다. 개인의 건강과 사정을 고려해주는 조직문화가 지금 보다 더욱 발달하면 좋겠지만 그런 문화는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만들기 힘들다. 조직 구성원들이 각자 상황에 맞게 자제하고, 건강을 챙기려는 의지가 그런 문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분명한 건 '과로'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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