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 15일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헌정특위) 가동을 시작으로 개헌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순탄치가 않다. 이날 처음으로 열린 국회 헌정특위에서는 위원장과 여야 간사 등을 정하는 상견례 성격의 첫 회의였지만 여야 의원들이 인사말부터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순탄치 않을 개헌 행보를 예고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한국당을 향해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치르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반면, 제1야당인 한국당은 국회 개헌 미합의 시 정부 차원의 개헌안 준비를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문제 삼아 여권의 개헌 추진 방침에 제동을 걸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당도 민주당과 한국당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향후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다.
현행 헌법은 1987년에 만들어졌다. 넥타이 부대까지 길거리에 나선 민주화 운동의 결실이었지만 시행 과정에서 적잖은 폐해가 드러났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을 지나치게 집중시킨 부작용이 가장 컸다. 권력교체기 때마다 대형 스캔들이 터졌고, 대통령과 측근들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무소불위의 권력은 국가 기능을 왜곡하는 비선 실세의 전횡을 불렀다.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은 이런 폐해를 의식해 제왕적 대통령제에 메스를 가하겠다고 일제히 목청을 높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홍준표 대표는 지방선거와 개헌투표 동시 실시를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눈앞에서 권력을 거머쥘 것으로 확실해지자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통한 개헌 논의 요구를 거절했고, 홍 대표는 말을 바꿨다. 그 결과 국회의 개헌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이미 개헌특위 지난 1년을 허송세월 했고, 또다시 꾸린 특위의 앞날도 매우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국적인 견지보다는 당리당략에 얽매인 영향이 크다.
자유한국당은 개헌을 지방선거 이후에 하자고 하지만 이는 사실상 개헌을 안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홍준표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약속한 ‘6월 개헌’ 공약을 왜 포기하는 건지 설명도 없다. 헌법은 엄연히 대통령에게도 개헌 발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해도 개헌 저지 의석(100석)을 지닌 자유한국당이 한사코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헌법은 국민 삶을 폭넓게 규정하는 고도의 규범이다. 그런 헌법을 고치는 과정이 국민 갈등을 부추긴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30여 년 만의 10차 개헌에 대한 국민의 갈증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이미 새삼 확인됐다. 정치권의 논의 부진과는 달리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6~7명이 개헌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보듯이 적잖은 부작용이 있음을 국민들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일정이 약간 촉박하지만 개헌 적기는 6월 지방선거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고 개헌 동력을 잃기 쉽다. 여야는 이번만큼은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초당적인 협력과 역량을 결집해 국가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