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위법'을 밥 먹듯 하는 국회

6·13 지방선거에 출마할 광역의원 후보자들이 자신들이 뛰어야 할 운동장도 모른 채 선거를 치르는 초유의 사태가 또벌어졌다. 2월 임시국회가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2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하는 점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지방선거 사무일정을 위해 이날 반드시 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달 28일 광역의원은 690명, 기초의원은 2,927명으로 조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소위에서 통과시켰다. 전체회의와 법사위,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아있긴 했지만 여야 원내대표 사이의 합의였기 때문에 누구도 처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당 소속 김재경 특위 위원장이 전체회의를 지연시키고 같은 당 소속 의원 몇명이 소위 통과안에 반발하면서 끝내 본회의에 상정하지 못했다. 특위는 1일 자정을 넘어 선거구 획정안을 의결했지만 이미 본회의가 산회한 뒤였다.





당초 선거구 획정 시한은 지난해 12월 13일이었으나 국회는 선거구획정 법정시한을 78일이나 넘긴 이날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처리해야 할 법안은 뒤로 한 채 서로에 대한 날 선 비난을 주고받았고, 개정안 무산 책임을 놓고도 서로를 탓하며 공방을 벌였다. 법을 만드는 국회 스스로 위법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특위에서 벌어진 소동을 지켜보다 끝내 산회를 선포한 정세균 국회의장은 “의장의 부덕의 소치인지 모르겠으나 부끄럽고 참담하다. 국민 뵙기도 그렇고, 지방선거 준비하는 예비후보자 대할 면목도 없다”고 했다. 중앙선관위도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이례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중앙선관위는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입후보 예정자가 선거를 준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알 권리도 침해되고 있다”며 “관련 규정이 조속히 개정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여야는 5일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지만 2일부터 광역의원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돼 당장 관련 업무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법을 어겨 혼란을 초래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때도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 ‘선거구 공백’ 사태가 두 달간 이어졌다. 선거구 공백 사태라는 초유의 상황을 59일 가까이 끌고서야 총선을 45일 앞두고 겨우 획정안을 의결했다. 그마저도 지역구 의석수를 7석 늘리는 타협안이었다.





국회가 법정시한을 밥 먹듯 어기는 것은 지방자치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선거구 획정이 늦게 이뤄지면 후보자 선출도 졸속으로 이뤄진다. 선거구 획정의 불확실성은 유능한 정치 신인의 진입을 더욱 어렵게 한다. 지방의회를 국회의 예속기관쯤으로 여기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인식에 분명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법정 기한이 준수돼야 공정한 선거가 치러질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