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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들의 무덤이 된 청와대

박원순 서울시장은 “독재정권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했다면,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영혼을 훼손했다”고 통렬하게 비난한 바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기에 국정원이 작성해 배포한 ‘박원순 제압문건’과 관련해 “서울시와 서울시민, 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고발한다”면서 그렇게 말했다. 박 시장은 또 “이명박 정권은 기나긴 헌신과 투쟁으로 만들어진 민주정부 수립을 허사로 만들고 30년 전 인권이 없고, 민주주의가 없던 세상을 복원시켰다”고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1년여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섰던 바로 그 자리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 나와 수사를 받는 것은 전두환·노태우·노무현·박근혜에 이어 다섯 번째다. 청와대가 무슨 대통령들의 무덤인가.





그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뇌물수수 횡령 배임 조세포탈 직권남용 등 적용된 혐의가 20개에 이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건 국민들이 할 소리다. 국민의 심정은 더 참담하다. 이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 받들었으니 말이다.





예상대로 그는 검찰 조사에서 뇌물 수수 등 거의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 “다스는 친형인 이상은 회장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과 관련해서도 “관련 내용을 보고 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의 다스 소송비 대납에 대해서는 이번 검찰의 수사로 뒤늦게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민간부문에서의 불법 자금 수수혐의 역시 부인으로 일관했다. 측근들에게 책임 떠넘기기에도 급급했다. 검찰 출두에 앞서 툭하면 ‘정치보복’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반성도 하지 않고 모든 범행을 부인하는 그가 법의 관용을 바라기는 어렵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70% 이상은 그를 구속해 마땅하다고 답했다. 검찰도 이런 여론을 정면으로 거스르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노골적 뇌물수수 사례는 초유의 일이다.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이미 관련 물증과 진술을 통해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까지 국민에게 최소한의 사과나 해명조차 않겠다는 것이,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취할 태도인지 개탄스럽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않고 있지만 그를 사법처리할 사유는 차고도 넘친다. 헌정 파괴 행위들 말고도, 국가 예산 22조 원을 투입해 국토를 황폐하게 만든 4대강사업을 둘러싼 부정과 특혜,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31조원을 투자했다가 국제적 사기를 당하거나 부실한 투자로 국고에 거액의 손실을 끼친 사실 등이 그것들이다.





한때 국가 최고지도자였던 사람이 재임 중 비리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은 죄의 유무와 혐의의 경중을 따지기에 앞서 국가적·국민적 비극이다. 이 같은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현재와 미래의 정치권력 모두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후진적 정치의 악순환을 되풀이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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