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있다. 나이는 열다섯이다. 그는 살인범으로 10년간 복역했다. 16년이 흐른 2016년 11월 17일 그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살인 누명을 벗었다. 지금 그의 나이는 서른셋이다. 소년은 청년시절을 국가권력에 빼앗겼다.
소설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지난 2000년 8월 10일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10년간 옥살이를 한 뒤 무죄 판결을 받은 최모씨 이야기다.
대법원 3부가 지난 일명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범 김모씨(37세)가 상고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강도 사건은 범행과 무관한 사람이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무려 18년에 거친 이 사건은 지난해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으로 이어지는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다. 무고한 시민이 흉악한 범죄자로 둔갑하거나 실제 저지른 범죄보다 훨씬 더 무거운 형벌을 감당해야 한다. 그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재심’ 사건이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나 완주 삼례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을 비롯해 최근 알려진 재심 사건에서 범죄자로 몰린 이들은 적게는 3년, 길게는 21년까지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우리나라 재심 환경은 대단히 척박하다. 억울하다는 사람은 계속 나오는데 재심이 가능한지 분석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재심은 변호사나 특정 개인 혼자만의 힘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직접 증거를 찾고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법의학자, 의학자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2016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재심법률지원소위’를 만들었으나 거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비법률가들의 관여를 사실상 막고 있기 때문이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범인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이다.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있고, 3심제도가 정착된 국가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개탄스럽다. 경찰이나 검찰, 법원 모두 범죄자나 다름없다.
국내 사법구조는 단계별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구조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하고 1심·2심·3심을 거치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것이 사법 절차다. 하지만 지금의 사법 절차는 잘못이 더 굳어지고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요즘 수사권 조정 등의 문제로 검찰과 경찰이 상대의 잘못을 부각하려는 것 같지만 실상 그들은 암묵적이고 견고하게 서로를 지켜왔다. 잘못된 수사와 판결에 의한 재산상 피해는 법으로 구제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망가진 인생과 명예는 어찌 보상할 것인가. 이러고도 진실을 밝히고 사법정의를 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악은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역으로 누구라도 잘못된 수사나 재판의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잘못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하고 나중에 법원에서 바로잡은 뒤에야 사과나 반성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