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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촌오거리사건, 사법권 남용이 부른 비극

경찰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과 관련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지 무려 18년이 흐른 뒤이다. 이 사건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경찰청은 지난달 30일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공식 입장 자료를 통해 “사건 발생 당시 수사 진행 과정에서 적법절차와 인권 중심 수사 원칙을 지키지 못한 부분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재심 청구인 등에게 큰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경찰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무고한 피해자 발생 방지를 위한 수사시스템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며 “자백 위주 수사에서 탈피해 객관적 증거에 입각한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재심 청구인과 같은 미성년자나 경제적 이유로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익산약촌오거리 사건의 진범은 잡혔지만 이 사건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범인을 만들어 내는 경찰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 보면 범인을 설정하고 증거를 짜 맞추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속 이야기이거나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지만 실제 익산약촌오거리 사건에서도 비슷하게 있었던 일이다. 익산약촌오거리 사건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재심’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 모(37)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 씨는 형이 확정되면서 사건 발생 18년 만에 마무리됐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강도 사건은 10대 소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간 옥살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00년 8월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택시 운전기사 유 모씨가 자신이 몰던 택시의 운전석에서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범인으로 사건을 최초 목격자인 최 모(32·당시 16세) 씨를 검거했다. 최 씨가 범인으로 특정된 이유는 사망한 유 씨와의 시비 중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최 씨의 억울함은 이때부터 시작했다. 사건 당시 최 씨의 옷과 신발에서는 유 씨의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에 쓰인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증거라고는 오로지 자백뿐이었다.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1심 재판부는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최 씨는 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자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며 사실상 누명을 받아들였다.





영국 법학자 블랙스톤은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법언을 남겼다. 이는 국가의 형벌권을 실현하는 형사사법의 기본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약촌오거리 사건에서는 이런 원칙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수사를 맡은 경찰, 기소를 담당한 검찰, 재판을 한 법원 모두 이를 배제했다. 피의자·피고인의 인권을 완전히 내팽개쳤다. 형사사법 절차에 관여하는 모든 사법관계자들은 약촌오거리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제2, 제3의 최씨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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