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 정보나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곳에서나 쓰는 줄만 알았던 특수활동비(특활비)가 국회의원들의 직책비와 대책비로 지급돼 사적(私的)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또 다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특수활동비는 예산에만 올라가 있고, 사용 내역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국민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검은 예산’. ‘눈먼 돈’이라 부른다. 참여연대가 수 년 동안 끈질긴 노력 끝에 지난 5일 공개한 국회의원 특활비 실상을 보면 실로 참담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참여연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에는 매년 평균 80억 원이 넘는 특활비가 꼬박꼬박 현금 지급됐다. 이 돈은 국회의장실과 교섭단체, 위원회 등에 활동 지원 명목으로 지급됐다. 각 정당들도 매달 1억 원 이상의 특활비를 받았다. 15개 상임위원회 위원장들도 매월 600만원씩 받아갔다.
지난 2011년 박희태 국회의장이 해외 순방을 나갔을 때 한 번에 7200여만 원의 현금을 받아간 사례도 있다. 2013년 3월 강창희 국회의장의 브라질, 페루, G20 국회의장회의 참석 때 약 5000만 원이 지급됐다.
강창희 전 의장은 임기동안 의원외교 명목으로 수억 원을 별도로 받았다. 강 전 의장은 6년 전 열린 제19대 국회 개원식에서 “특권은 없고 헌신과 고뇌만 있는 일 하는 국회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외쳤다. 그런데 이 행사에 특수활동비 300만 원이 쓰였다.
이런 돈은 세금도 붙지 않는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것인데, 특활비는 그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제헌절 경축식 경비, 국회의장의 광복절 경축식 참석 경비도 ‘의원외교활동’으로 분류해 모두 특활비로 충당했다. 사례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국회 특활비가 영수증 첨부 없이 국회의장, 교섭단체 원내대표, 운영위원장 등 상임위원장 등이 나눠 쓰는 ‘쌈짓돈’이라는 비판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지난 2015년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008년 당시 국회 운영위원장을 하며 받은 특수활동비 일부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했고, 신계륜 전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받은 특수활동비를 아들 유학비에 보탰다고 밝혀 심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상임위원회 등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국민세금에서 지급된 공금을 개인적 용도에 써도 괜찮다는 두 사람의 공통된 인식이 무엇보다 놀랍다.
정부의 방만한 예산 집행을 질타해 온 국회는 자신들의 특활비 제도 개선은 외면하고 있다. 국회 특활비 유용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면 개선을 약속했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넘어가기를 되풀이해 왔다.
얼마 전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3개월 특활비 3,000만원을 반납한 후 특활비 폐지 법안을 내려다 300명 의원 중 발의에 필요한 10명의 동의도 얻지 못해 발의를 포기한 해프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입버릇처럼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말하지만 제 밥그릇에 손대는 것은 단호히 거부한다. 국회 특활비를 폐지하는 법안은 지난해 11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도 발의해 제출돼 있지만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특활비의 흑역사를 방치하고 어떻게 국회개혁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유구무언’이요, 이판사판 ‘요지경 속’이니 통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