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외압으로 소득분배지표 같은 국가통계가 제때 공표되지 못한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통계의 표본 선정과 분석 과정에도 권력의 입김이 종종 작용했다고 한다. 가격이 급격히 오르던 금반지를 조사 품목에서 제외하고 입맛에 맞는 물가 통계를 만들었다가 ‘MB 물가’라고 빈축을 산 전례도 있다. 산업활동동향이나 고용동향 등의 발표를 앞두고는 수시로 통계청장을 불러 사전에 정보제공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우리나라 국가시스템 상 충분히 추론이 가능한 얘기다.
통계는 경제 흐름을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그만큼 통계는 사람을 속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전주 출신 황수경 통계청장의 석연치 않은 경질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통계청장의 갑작스러운 교체를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는 지난 26일 황수경 청장을 전격 경질하고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장을 후임 청장으로 임명했다. 지난해 7월 임명된 황 청장은 13개월여 만에 옷을 벗었다. 역대 통계청장은 통상 2년간 재임했다.
황 청장의 갑작스러운 경질은 1, 2분기 가계동향조사가 직접적인 배경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이 통계는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한 해 전보다 각각 8%, 7.6% 급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촉발한 고용대란에 이어 소득·분배 참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통계다.
지난 5월 1분기 가계동향조사 발표 후 황 전 청장은 조사대상 표본 수가 늘어난 점을 적극 홍보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지난해 5500가구였던 표본가구를 올해 8000가구로 늘렸는데, 저소득 가구를 많이 포함해 최하위 소득이 크게 감소한 것처럼 된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사를 잘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만약 정권에 불리한 통계가 나왔다는 이유로 통계청장을 바꿨다면 심각한 문제다. 국가 통계는 정책 판단의 근거이자 중장기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가 된다. 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의 정책을 기획, 집행, 평가하는 객관적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 통계가 정부의 여론몰이를 위해 왜곡되고 오용된다면 사회적 불신 등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동안 국가 통계에 대한 불신이 많았다. 국가 통계가 왜곡되면 이에 바탕을 둔 정책이 망가지고 국민 세금이 허투루 새 나간다. 당연히 왜곡된 통계수치에서 정책에 대한 처방도 제대로 나올 수 없다. 정치적 이유로 통계 생산이나 분석, 발표를 간섭해선 안 되는 이유다. 국가 통계를 조작하거나 정권 입맛에 맞게 손대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중대한 국익 훼손 행위다.
통계법은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며 작성된 통계는 지체 없이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국가자원인 통계는 신뢰성이 생명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통계청의 정치적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통계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나라의 장래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