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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의 백두산 동행. 다음엔 한라로...

백 마디 말이나 글보다는 인간의 몸짓 하나가 진한 감동과 신뢰를 줄 때가 많다. 남북 정상이 지난 20일 백두산에 올랐다. 두 정상은 당초 예정에 없었던 전격적인 백두산 방문을 통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남북 간 가야 할 길은 아직도 첩첩산중이지만 두 정상의 백두산 동행은 그 어떤 대화나 문서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크고 온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금강산·묘향산·북한산·지리산과 함께 오악(五岳)으로 분류되는 백두산은 해발 2750m의 휴화산으로 우리 민족의 개국설화가 서린 곳이요, 일제 강점기엔 민족독립을 위한 투쟁의 흔적이 배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름 모를 꽃과 풀과 바위들이 역사 속에서 함께한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압록강, 두만강 발원지이자 백두대간의 시발점으로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불리고 있다.





백두산은 그 자체로 한민족을 상징한다. 금강산과 설악산, 한라산 등 한반도 내 명산이 많지만 ‘민족의 영산’이라는 타이틀은 오직 백두산에만 허락된다. 셀 수 없이 많은 신화와 설화가 백두산을 기반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동시에 동해와 서해로 흐르는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큰 강의 발원지다. 그야말로 민족정기의 원천이다.





남북관계로 범위를 좁히면 정치적인 의미가 더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벌어진 항일 무장 투쟁의 거점 중 한 곳이 바로 백두산이다. 김일성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항일 투쟁을 펼쳤고, 그 후손인 김정일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통성을 이어받아 나라를 이끈다는 이른바 ‘백두혈통’이 북한의 핵심 통치 원리다. 때문에 백두산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김씨 일가 신화의 핵심에 있고, 그들 스스로 민족의 성산이라고 부르며 ‘백두혈통’의 정신적 발원지이자 정통성의 근원으로 숭앙되고 있다. 방북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전격적인 백두산 방문은 그래서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등산 마니아인 문 대통령은 지난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에게 백두산 방문 희망을 피력한 바 있다. 지난 18일 평양국제공항 도착 뒤에도 “중국 동포가 백두산에 여러 번 초청했지만 백두산에 가되 중국이 아닌, 북쪽으로 올라가겠다고 그동안 공언해왔다”면서 재차 방문 희망을 밝혔다. 백두산이 갖는 역사적 정치적 의미와 남북미 관계의 현 지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남북 정상이 최초로 손을 맞잡고 백두산을 오르는 것은 사실상 그간 분단의 역사를 뛰어 넘어 새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파격적인 방문 행보로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고, 남북 정상의 한반도 항구적 평화 체제 정착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까운 시일 내 서울에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남한을 찾게 되면 두 정상이 이번엔 한라산을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두 정상의 백두산 방문이 반세기가 훨씬 지난 분단의 벽을 낮추는 데 디딤돌이 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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