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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천년',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자

경북 경주시의 ‘2012~2017년도 경주 방문 관광객 통계’를 보면 지난 2012년 67만3천330명에서 2013년 69만1천260명, 2014년 73만6천529명, 2015년 59만186명, 2016년 56만5천593명, 총 방문객은 2012년 1천173만7천463명, 2013년 1천328만7천513명, 2014년 1천382만3천451명, 2015년 1천136만9482명, 2016년 1천95만1천227명, 2017년 1천261만8천344명이다.





잘 알다시피 경주는 천 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도시다. 경주라는 도시를 걷다 보면 어디에서든 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천년의 왕국’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를 비롯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굴암·불국사’ 등 다양한 역사문화자원들이 있는 국내 최고의 문화도시이다.





경주는 명실공이 국내 최고의 역사문화 관광지로 꼽힌다. 이렇듯 조상의 숨결이 녹아 있는 역사문화 자산은 아무리 유구한 세월이 흘러도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위대한 자산으로 찬란한 빛을 발한다. 더불어 경주처럼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에도 엄청나게 기여한다.





올해는 ‘전라도(全羅道)’라는 명칭이 생긴 지 1000년이 되는 해다. 전국 팔도 중 가장 먼저 생긴 전라도는 1896년까지 이어졌다. 지난 1000년은 전라도 곳곳에서 유려한 역사·문화자원을 탄생시키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전주는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설치됐던 역사적인 장소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남북, 제주를 담당한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지방통치행정관서다. 조선왕조 500여년 내내 전주에 자리했다. 전주는 당시 전라도 최고 통치기관이 소재한 호남제일성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전라감영 자리에 전북도청이 들어섰고 전북 도정 중심이 됐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반봉건 민중으로 상징되는 동학농민혁명, 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의병항쟁, 군사정권에 맞선 광주민주화운동 등 반외세 민중혁명이 모두 전라도 땅에서 일어났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지난 천년의 역사 동안 전라도는 절의와 저항의 실천력을 갖춘 한국정신의 본향이자 비판적 실천력을 갖춘 인재의 고장이었다.





전라도 정도 천 년을 맞아 전북도, 광주시, 전남도 등 전라도 3개 광역 자치단체장이 2년 전‘전라도 천년기념사업’을 위해 손을 잡았다. 이들 3개 지역은 공동으로 18일 전주에서 ‘전라도 천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지난 1월 1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천년맞이 타종식’에 이어 전라도 정도(定道) 1000년을 자축하는 행사다.





경상도라는 이름은 전라도 보다 300년이 지난 뒤에 나왔고, 충청도·강원도·경기도 등은 그보다 더 뒤에 명명됐다. 이렇게 미답지인 상황에서 전라 3곳의 자치단체가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을 위해 뭉친 것만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동안 전라도는 ‘차별’과 지역적 편견에 노출됐고, 스스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라도 천년’을 통해 전라도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전라도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라도 천년을 맞이해 전라도민의 저력을 모아서 새로운 천년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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