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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음서제 '고용세습'은 사회 악(惡)이다

노동계의 고용세습은 그동안 숱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다. 청년 취업난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현대판 음서제’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을 청년 구직자나 가족들로서는 분노가 치밀 일이다. 고용세습은 근로자 채용과정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행위다.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정규직 전환 파문이 확산일로다. 야당 정치권은 시대착오적 고용세습에 대해 국정조사도 불사하는 등 강경한 입장이다. 고용절벽에 절망하며 좁은 문을 두드리는 청년들의 낙담과 분통을 생각하면 당연한 대응이다.





공사 측의 자체조사에서 직원 1만7084명 중 1912명(11.2%)이 친인척 관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108명은 무기계약직으로 입사 뒤 올해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간 교통공사 측에 쏟아진 세습고용 의혹이 기정사실화되는 형국이다. ‘친인척 우대채용 금지’라는 내부 인사규정이 버젓이 있는데도 부모·형제와 며느리까지 포함된 ‘가족 인사잔치’가 벌어졌다니 말이다. ‘고용절벽’과 ‘고용 참사’에 절망하는 청년들 입장에선 분통이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파행이 서울교통공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크다.





고용노동부가 2년 전 2769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노조원 자녀 우선·특별 채용을 포함한 고용세습 조항을 둔 곳은 25.1%에 달했다. 민노총 소속 기업은 37.1%에 이르렀다. 공공기관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이 고용노동부 등을 통해 조사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현대자동차, 현대로템, 금호타이어 등 15개 기업이 단체협약에 고용 세습을 보장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이 기업들은 정년퇴직이나 장기 근속한 조합원의 자녀는 결격 사유가 없거나 다른 지원자와 같은 조건일 경우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정 기간 근속한 조합원이 사망하거나 질병·장해로 근무할 수 없는 경우 자녀나 배우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한 곳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 사회의 지향점과 관련,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현대판 음서제 격인 세습고용은 이와 거꾸로 가는 구태다. 매년 반복적으로 불거지고 비난 여론이 거센데도 고용 세습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처벌도 약하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사회적 형평 차원에서 고용세습은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된다. 당국은 노조에 시정조치를 내리고 관련법을 손질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이 현대판 음서제에 가로막혀 눈물을 흘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솜방망이 수준인 처벌 수위를 강화해 강제력을 갖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안이 시급히 고려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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