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한 법정 기념일이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결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선정위원회 평가회의를 통해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이 황토현전승일인 5월 11일(음력 4월 7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황토현전승일은 1984년 5월 11일 동학농민군이 정읍 황토현 일대에서 최초로 관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둔 날이다. 선정위는 ‘황토현 전승일’이 1984년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군과 격돌해 최초로 대승한 날로, 이날을 계기로 혁명 열기가 크게 고양됐고, 이후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지난 2월 구성된 선정위는 그동안 고창군, 부안군, 정읍시, 전주시 등 4개 자치단체가 추천한 기념일을 대상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적합성을 심사해왔다. 선정된 기념일은 대통령령 개정 절차를 통해 행정안전부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반영할 예정이다.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 제정 추진은 지난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시작됐다. 고창군은 ‘무장기포일’ 4월 25일, 부안군은 ‘백산대회일’ 5월 1일, 정읍시는 ‘황토현 전승일’ 5월 11일, 전주시는 ‘전주화약일’ 6월 11일을 법정 기념일로 추천했었다. 그러나 각 지역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기념일 제정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됐다.
더욱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8월 전북 지역은 물론 충청과 전남 등 전국 모든 해당 자치단체들에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날짜를 추천해 달라는 공문까지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북은 기념일 제정의 주도권을 타 시도에 빼앗길 위기마저 겪었다. 혁명군의 옷깃이 스친 지자체마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40여개의 국가기념일이 기려지고 있지만 동학농민혁명의 경우처럼 기념일 날짜를 놓고 이리 오랫동안 대립과 갈등을 빚은 사례는 없었다. 숭고한 혁명의 정신을 기리자는 것인지, 지역 낯내기를 하자는 것인지 개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동학농민혁명에 담긴 나눔과 배려, 협동, 상생 정신은 오간데 없이 기념일을 두고 지역주의만 판을 쳤다. 동학농민혁명이 마치 특정 지역이나 특정 단체의 전유물인 양 호도됐다.
어찌 됐던 지역 간 오랜 갈등과 진통 끝에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이 마무리됐다. 지역마다 나름의 합당한 이유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에 정읍 황토현전승일로 최종 선정된 것에 대승적 차원으로 포용해야 한다. 지역 간 더 이상의 갈등과 반목은 없어야 한다. 그것은 세계사에 빛날 혁명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은 물론 숭고한 혁명정신까지 훼손하는 것이고, 피를 뿌리며 외세와 부패에 항거했던 선조들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유족회 등이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선정 심사결과 발표에 대해 이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