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사회를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한 ‘미투 운동(#MeToo/나도 고발한다)’이 겉으로는 한 동안 잠잠해지는 듯 하다가 이번에는 체육계를 휘감고 있다.
빙상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충격적 폭로에 이어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 씨가 고교시절 유도부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심석희 선수가 겪은 폭행 및 성폭력과 관련된 부분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지난 14일에는 고창 영선고 유도 유망주였던 신유용씨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코치에게 당한 고통스러웠던 과거사를 세상에 알렸다. 신 선수는 코치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했고,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인 2011년부터는 20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코치는 신씨에게 “너 막 메달을 따기 시작했는데 이거 누군가한테 말하면 너랑 나는 유도계에서 끝이다. 우리 한국 떠야 해. 한강 가야 해”라고 협박까지 일삼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인 2015년까지 5년 동안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됐다고 전했다.
이에 신 선수는 지난해 3월 성폭행 혐의로 A코치를 고소했다. 신 선수는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심석희 선수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는 “심석희 선수는 현역 최정상급의 스케이트 선수인데도 용기를 내줘서 대단히 감사하다”면서, “심 선수도 어릴 때부터 맞았다고 했는데 운동선수들이 다 그래서 말을 못 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체육계에서 두 선수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는 게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물론 어디 그런 추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체육계뿐일까. 지난해 열풍처럼 전국을 뒤흔들었던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는 각 분야를 막론하고 성폭력이 만연돼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목도했다.
최근에는 익산시청 간부 공무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여성 직원들에게 또 다른 간부 공무원들이 합의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익산시 공직사회가 시끄럽다.
‘성폭력특별법 제정(1994년), 전자발찌 제도 도입(2008년), 성범죄 친고죄 전면 폐지(2013년)’ 등은 지금까지 이뤄진 성범죄 관련 굵직한 제도 변화다. 모두 끔찍한 성범죄가 발생하고 피해자들이 극한의 고통을 표출한 뒤에야 이뤄졌다.
하지만 가해자 중심의 사고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성의식과 이에 따른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 후 문화예술계와 정계 등 사회 전반에서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번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정부에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성범죄 공소시효 연장 등 미투로 드러난 문제 일부의 개선방안을 담았을 뿐이다. 성범죄를 뿌리 뽑을 만한 강력한 방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성폭력이나 성범죄 등과 같은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성폭력 무관용’ 원칙 운운하며 발본색원에 나서겠다고 외치고 있으나 하나같이 면피용에 불과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말마따나 법이나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어떤 대책이든 제대로 작동될 수 없는 구조가 문제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이 있어도 음흉한 권력구조를 작동시키는 사람이나 가치·문화 등이 바뀌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