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한국 동계 스포츠는 심한 후폭풍에 시달렸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었던 ‘팀 킴’ 김경두 일가의 비리가 선수들을 통해 조목조목 폭로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지난 8일 한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에게 만 17세 때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소하면서 스포츠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이어 13일에는 유도 선수 출신인 신유용씨가 코치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뒤 협박·회유에 시달린 것을 폭로하며 국민의 끓는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체육계의 폭력과 성폭력은 스포츠 강국으로 꼽히는 우리의 부끄러운 이면이다. 이번에 ‘미투’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체육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체육계 미투의 이면에는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병폐를 바로잡지 못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있다. 선수나 지도자 개인의 문제보다 체육계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의 우리나라 체육의 패러다임은 엘리트 육성 중심의 체육이었다. 엘리트 체육이 중시된 주요 이유는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 엘리트 스포츠를 통한 국민 통합, 스포츠를 통한 체제 우월성 입증 등의 목적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냉전 시대에는 집중적으로 육성해 국가적 이해에 부합하도록 하는 엘리트 체육의 패러다임이 특히 지배적인 경향이었다.
오랜 합숙과 도제식의 훈련 방식은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구조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1966년 태릉선수촌 설립을 계기로 박차가 가해진 이같은 시스템의 가장 큰 목표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선전해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면 국민들이 더 행복해 할 것이라는 논리다.
보통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엘리트 체육 선수들에게 지도자들이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각종 대회 출전은 물론,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도 지도자들의 입김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렸고,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는 주종 관계로 굳어졌다.
더욱이 은퇴가 빠른 운동선수 특성상 은퇴 이후 지도자 생활이 중요한데, 지도자의 눈 밖에 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번에 문제가 터지자 대한체육회는 성적 지상주의와 엘리트 체육 위주인 육성 방식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합숙 위주, 도제식 훈련 방식에 대한 근원적 쇄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과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체육계 내부의 반성과 각성이 먼저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성적만능주의’에서 시작한다. 이제 국가 주도의 선수 육성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이번에 선수들의 희생으로 다시 어렵게 잡은 체육계 정상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