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은 ‘전라도(全羅道)’라는 명칭이 생긴 지 1000년이 되는 해였다. 전국 팔도 중 가장 먼저 생긴 전라도는 1896년까지 이어졌다. 지난 1000년은 전라도 곳곳에서 유려한 역사·문화자원을 탄생시키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전라감영(全羅監營)’ 복원 1단계 공사가 올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라 한다. 전주시는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 1단계 공사를 오는 11월까지 끝내고, 풍남문 및 전주부성 일부 복원, 전주풍패지관 주변 정비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11월이면 선화당과 내아, 관풍각, 연신당 등 감영의 주요 건물의 복원이 완료돼 조선시대 전북과 전남, 제주를 담당했던 전라감영의 옛 모습을 되찾게 된다고 하니 벌써부터 ‘전주다움’의 전통문화 향기가 적셔오는 듯하다.
전라감영은 조선 태조 4년(1395년)~고종 22년(1895년)까지 500년간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해온 중심 관청이었다. 이후 갑오개혁(1895년)으로 8도제가 폐지되고 일제 강점기에는 상업시설이 난립하는 등 영욕의 세월 속에 지금의 모습으로 남겨졌다.
지금은 빛바랜 중소도시로 전락해 존재감조차 잃어가고 있지만 과거 전주가 어떤 도시였던가.
조선시대 전라도는 현재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제주도까지 포함한 지역이다. 정조13년(1789), ‘호구총수’에 등재된 전주부 호구수는 총 2만947호, 7만2505명에 달했다. 전주가 호수로는 한양, 평양에 이서 3번째였다. 인구수는 한양, 평양, 의주, 충주에 이어 5번째였다니 이 고장 전주가 과거 얼마나 위풍이 당당했던 도시였던가를 짐작케 한다. 전주를 조선의 3대 도시로 칭했던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전라감영은 전라도 일도를 총괄하는 지방통치관서로 조선왕조 500여년 내내 전주에 자리했다. 전주는 이런 전라도 최고 통치기관이 소재한 호남제일성이었다. 전라감영은 전라문화 발전의 중심이었던 셈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는 조정과 집강소 설치를 위한 전주화약을 맺은 공간이기도 하다. 전라감영은 한국근대사에서 최초로 농민권력기구가 설치된 곳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전라감영 자리에 전북도청이 들어섰고 전북 도정의 중심이 됐다.
지난 2017년 11월 전주시는 전라감영 복원공사의 첫 삽을 떴다. 시는 총 84억 원을 들여 선화당과 내아, 내아 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핵심건물 7동을 복원할 계획이다.
전라감영 복원은 단순한 건축물 복원이 아닌 전주시민의 자존감을 세우고 역사성과 상징성을 복원하는데 가치가 있다. 이는 ‘문화특별시’를 지향하는 전주시의 미래 비전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라감영 복원은 또 전주문화의 정수를 되살리는 일이자 잃어버린 호남의 자존과 긍지의 복원이라 할 수 있다. 3도(道)를 호령하던 옛 전라감영의 복원을 계기로 전북이 환황해 시대의 주역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는 기회가 되도록 준비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