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논란과 진통 끝에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이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로 결정되게 됐다. 정부는 지난 19일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을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로 의결했다. 이날은 동학농민군이 1894년 정읍 황토현 일대에서 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날이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된지 15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기념대회와 기념사업 추진을 위해 ‘동학농민혁명백주년 기념사업단체협의회’가 결성 된지 25년만이다.
동학농민혁명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 제정은 그간 문화체육관광부의 위임을 받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을 중심으로 유족회, 학계, 전국 기념사업단체 등이 참여해 수차례 시도했지만 자치단체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돼 번번이 좌절된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학농민혁명은 전국적인 봉기라는 특성 때문에 지역마다 연고가 깊다. 고창, 정읍, 전주, 부안, 삼례, 공주 등 지역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성지요, 소중한 장소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지역 간 논쟁이 계속되자 문체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기념일을 공모한 결과 전북 4개 지방자치단체가 경합을 벌였다. 전주시는 전주화약일(6월11일), 고창군은 무장기포일(4월25일), 정읍시는 황토현 전승일(5월11일), 부안군은 백산대회일(5월1일)을 추천했다.
황토현 전승일은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군과 격돌해 최초로 대승한 날이다. 선정위원회는 이날을 계기로 농민군의 혁명 열기가 크게 높아졌고, 이후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해 일어난 아래로부터의 민중항쟁으로, 한국근대사의 전환점이 됐으며 청·일 전쟁을 잉태해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적 진로를 결정지은 국제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무려 100년 동안이나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국권 상실과 남북전쟁, 군사혁명 등으로 이어진 절박한 시대상황 탓이었다.
그러던 것이 혁명 100년이 되는 해인 지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 사업회’결성과 함께 역사의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비로서 정체성 확립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동학란’ 또는 ‘동학운동’으로 폄하돼 오던 혁명의 성격을 ‘동학농민혁명’으로 공식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사실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변화시키고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을미의병,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지평을 연 근대 민족사의 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기념일 지정은 미완의 혁명을 완성된 혁명으로 승화시키는 의미를 갖는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자주국가를 지향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 계승은 외세에 의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최근의 남북 상황에서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