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세종시 환경부 청사 앞에선 가습기살균제환경노출피해자연합 등의 단체가 ‘가습기살균제피해자 인정투쟁 국민출정식’을 열었다. 지난달까지 신고 된 피해자만 6300여명이고 이 중 1390여명이 사망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선포하는 행사였다. 이들은 “SK케미칼은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하고, 국내 대재벌과 해외 다국적기업은 앞 다퉈 (가습기살균제를) 개발·제조·판매했다”며 “정부는 안심하고 사용하라는 KC마크를 부여해 국민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 협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4일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를 통해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열거했다.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는 피해자의 몸만 망가트린 게 아니었다. 정신건강 피해도 심각했다. 피해자들이 우울과 죄책감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수치로 환산하니 일반인보다 4.5배 높았다. 성인 피해자 66%는 만성적 울분 상태였다. 사회적 울분도 심각했다. 사회적 울분은 정의에 어긋나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을 말한다. ‘심각한 울분 집단’에 속하는 피해자들은 정부의 피해 보상·대응 체제가 미흡한 탓에 사회적 울분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흔히 가습기 살균제 참사라고 하면 육체적 고통만 떠올리지만 이번 조사 결과 정신적인 피해와 가족 및 사회 구성원 역할 제약 등 피해가 매우 광범위했음이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의 상처가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발표에 나선 한 피해자는 “왜 피해자더러 피해 사실을 입증하라고 하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피해자에게 피해를 증명하라는 것은 가습기를 다시 쓰면서 독가스를 또 흡입해 입증해 보라는 얘기와 뭐가 다른가.
가습기 살균제는 소리 없이 퍼지는 독성 때문에 ‘죽음의 약품’ ‘죽음의 연기’로 불렸다. 1994년 제품이 출시돼 2011년 판매중단 조치가 내려질 때까지 매년 60만 개가 팔렸다고 한다. 특히 “기침을 자주 하는 세 살배기 아이를 위해서 하루 12시간씩 열심히 가습기를 틀었는데 알고 보니 죽음을 재촉한 것이었다”는 어느 엄마의 절규는 전 국민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가습기 사건을 통해 재차 확인된 일이지만 사람의 목숨까지 담보 삼아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된 상업 논리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터지자 관련 제품을 만든 SK케미칼은 당시 이 제품의 유해성 여부 실험 보고서가 없어졌다고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일관했고, 심지어 유해성 실험도 하기 전에 이미 제품부터 팔아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이번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정부 계획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드러난 이상 실질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가습기살균제 원료가 인체에 유독하다는 실험결과를 확보하고도 은폐한 해당 기업을 일벌백계로 다스려 상술에만 눈이 먼 악덕 기업에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