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미세먼지 공포로 신음하는 와중에 오염 배출량을 속여 온 업체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일부 입주기업들의 대기오염물질 측정값 조작은 기업과 대행업체가 짜고 제도적 맹점을 악용한 비리의 전형으로 드러났다.
여수산단 석유화학 업체 직원과 대기오염 물질 측정업체 직원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보면 기가 찬다. 측정업체 직원이 “메일로 보내주신 날짜와 농도로 만들어 보내드리면 되나요?”라고 묻자 배출업체 직원은 “탄화수소 성적서 발행은 50언더로 다 맞춰 달라”로 답했다. 이메일을 통해 특정 기간의 수치를 얼마로 바꿔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곳은 질소산화물 같은 미세먼지 원인 물질이 많이 배출되는 곳이라 최대 6개월에 한 번씩 배출량을 측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측정업체와 짜고 배출량 수치를 조작해 왔다. 지난 4년간 무려 1만 3천여 건이 조작됐다. 아예 측정도 안 하고 허위로 기록한 게 8천 건이 넘고 나머지는 오염물질 측정값을 축소했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은 먼지와 황산화물 측정값을 법정 기준의 30% 미만으로 조작하는 수법으로 배출 부과금을 회피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은 5만8천932개다.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 관리·감독 업무는 2002년 환경부에서 광역자치단체로 넘어갔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몇 명 되지 않는 담당 공무원으로 실시간 감시망을 구축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기오염물질을 뿜어내는 사업장은 매주 혹은 반기마다 사업장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농도를 자체적으로 측정하거나 대행업체에 맡겨서 측정하도록 했다. 이른바 ‘셀프 측정’이다.
기업 스스로 또는 전문업체에 맡겨 대기오염물질 배출 수준을 측정하고, 기준치를 초과하는 결과가 나오면 자체 개선하는 방안으로 제도를 마련했지만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당국의 눈만 피하면 얼마든지 대행업체와 짜고 대기오염물질 배출 측정값을 속일 수 있다는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대기오염물질 측정대행업체는 전국적으로 395곳이 영업 중이다. 사실상 대행업체가 측정을 원하는 기업체로부터 계약을 따내야 하는 ‘갑을 관계’ 구조인 관계로 얼마든지 조작의 소지가 크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은 대행업체와 짜고 배출농도 측정값을 조작해 설비개선 비용을 아끼고 심지어 기본배출 부과금까지 면제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여수산단의 조사 결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데 있다. 다른 지역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비일비재할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염물질 배출 사업자가 측정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계약하는 셀프측정을 더는 신뢰할 수 없다.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오염물은 비상저감조치만으로 부족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오염물이나 미세먼지 발생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은 특별 관리를 하는 동시 셀프측정 배출량 조작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