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 하청업체들의 서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청업체 입장에서 원청업체는 갑중의 갑, ‘슈퍼 갑’이다. 하청업체들이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기업 운영에 관한 모든 생사여탈권은 원청업체에게 있다. 경기나 관련 업황이 악화돼 기업실적이 부진에 빠지면 정작 죽어나는 것은 하청업체들이다. 가격 후려치기에다 도중에 일감이라도 끊긴다면 그걸로 끝이다.
원청업체들은 체질이 튼튼하고 곡간에 채워 놓은 곡식이 넉넉하기 때문에 웬만한 경기불황 쯤은 견뎌낼 수가 있고, 경기가 호전되면 그간의 부진을 곧바로 딛고 일어나 원상복구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청업체들은 그 보릿고개를 견디지 못하면 문을 닫고 마는 게 일반적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협력업체들의 경우가 그 같은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7년 7월 문을 닫은 군산조선소의 재가동 소식이 감감무소식에 빠지면서 협력업체들의 처지가 극단으로 내몰리고 있다.
86개 협력업체 가운데 68개 업체가 문을 닫거나 군산을 떠났다. 군산조선소 협력업체들은 현대중공업이 이달 말까지 재가동과 관련된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손해배상 청구 및 항만부지 원상복구, 공장 등록 취소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혀 사태는 더욱 악화일로에 빠지고 있다.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온 협력업체들마다 더 이상 버텨낼 힘을 잃었거나 업종 전환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상황에 빠져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소송을 택한 셈이다.
군산조선소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군산조선협의회’는 현대중공업에 대해 손해배상, 항만부지 원상복구, 공장 등록 취소 등 3가지 소송을 진행할 방침이다. 손해배상의 경우 현대중공업이 군산에 입주할 당시 1차 협력업체들을 끌어들였지만 기업이윤을 명목으로 수많은 협력업체를 도산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책임을 묻겠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항만부지 원상복구 소송은 공장 문을 닫은 만큼 산업용지로 변경된 조선소 부지를 애초대로 항만시설보호지구로 되돌려 부두로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장 등록 취소는 공장을 가동하지 않으면 산업단지 입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관련법에 따른 것이다.
현대중공업 측은 수주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 2019년까지는 재가동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 조선경기가 되살아나고 수주 물량도 증가하고 있음에도 군산조선소의 재가동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측은 묵묵부답 내지는 ‘시기상조’라 하고, 정치권 등에서는 ‘우는 아이 달래기’ 식의 온갖 립 서비스로만 일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현대중공업은 물적분할을 추진하겠다고 나서 사주일가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만 눈이 멀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만 마무리되면 재가동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는 한 가닥 기대도 있지만 그간 대기업들의 행태를 볼 때 믿거나 말거나일 뿐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뱉어내는 대기업들의 탐욕과 오만함에 속이 또 뒤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