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 왔다. 이번 사태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 5일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 송하진 도지사가 국가와 지역의 미래 먹거리로 대표되는 ‘탄소산업’을 언급하며 정부와 정치권에게 던진 말이다.
탄소산업 육성의 토대가 될 국가차원의 탄소산업 컨트롤타워, 탄소산업진흥원 설립을 위한 ‘탄소소재법’ 개정안이 3년째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것을 꼬집은 발언이다. 관련 법안에는 탄소섬유 상용화와 고성능급 원천기술 개발, 그에 필요한 전문인력 양성 등을 주도할 국립 한국탄소산업진흥원을 신설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법안은 도내 정·관가가 손잡고 2017년 8월 발의한 상태다.
현재 전국탄소산업연구조합 회원사는 모두 150개사로 이중 60%(90개사) 가량이 도내에 둥지 틀고 있다. 소규모 기업까지 포함하면 모두 137개사가 도내에 생산라인을 뒀다. 정읍 첨단과학산업단지에도 35개 방사선·바이오 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06년 전북도는 탄소섬유 생산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산업 육성정책 추진, 2014년에는 탄소산업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이듬해에는 관련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하기도 했다. 탄소산업진흥원은 그동안 산발적으로 진행된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차원에서 장기간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탄소산업 육성전략 마련을 위해 설립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던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가 않다. 여전히 전북산 탄소섬유를 사용하는 국내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탄소섬유 선도기업이자 국내 첫 중성능급(T700) 국산화에 성공해 큰 주목을 받아온 효성 전주공장 생산품은 전량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현대차에 특수 부품을 납품중인 도내 한 중견 기업조차 일본 도레이사 탄소섬유를 납품받아 사용할 정도다. 자연스레 고성능급(T1000) 탄소섬유 개발에 필요한 재투자도 힘겨운 실정이다. 내수시장조차 일본산에 점령당하다시피 한 탓이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 가운데 하나가 한국탄소산업진흥원 설립이지만 탄소소재법이 현재 국회에 발목이 잡혀있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여야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타 지역 의원이 발목을 잡으면서 무산됐다. 정당 간, 지역 간 이해관계에 따른 정략에 탄소소재법 개정안이 희생양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다시 해를 넘긴다면 내년 4.15총선 정국과 맞물려 법안 자체가 자동 폐기될 수밖에 없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 일본의 경제보복이 역으로 전북으로서는 탄소산업의 중흥을 한 발 앞당기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에 지금이 적기다. 글로벌 강대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지자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었어도 판로가 없거나 지속적이면서 안정적으로 생산할만한 기반이 부실하다면 수명을 다할 수 없다. 문제를 외부로 돌리기 전에 먼저 우리 내부에 있는 걸림돌부터 치우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