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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상피제’ 도입만이 능사일까

고교 ‘상피제(相避制)’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전북교육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고교 상피제는 자녀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부모 교사가 근무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고교 상피제 도입은 지난해 숙명여고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교육부는 급기야 지난해 12월 각 시도교육청에 고교 상피제 도입을 적극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전북교육청을 제외한 전국 16개 모든 시도교육청은 중등 인사관리 기준에 '국공립 고교 교원-자녀 간 동일 학교 근무 금지 원칙'을 반영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유일하게 전북교육청은 상피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제도 개정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김승환 교육감은 "상피제에는 모든 교사가 시험 출제·평가 과정에 부정하게 개입할 소지가 있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이런 태도는 교사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립학교는 쏙 빼고 공립학교에만 해당하는 상피제는 헌법 제11조 1항에 규정된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교사들이 헌법소원도 낼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김 교육감은 "(상피제 없이) 교육과정과 학사 운영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교육시민단체는 지난 23일 논평을 통해 “상피제 도입은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한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불평등한 출발선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 중 하나라 할 수 있다”며 상피제 도입을 촉구했다. 단체는 “법령을 제정하고 규칙이나 원칙을 정하는 것은 교사 또는 해당 당사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예단해서가 아니라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최소한 지켜야 할 서로 간의 약속을 정하는 것이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고교 상피제 도입은 교육주체들 서로 간에 괜한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예방조치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피제 도입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단정 짓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상피제는 교사 입장에서 볼 때 분명 불쾌한 일임이 분명하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의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나쁜 결과가 발생할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교사를 범죄인으로 예단하는 제도 같아 개운치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교사의 양심을 제도로 규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따지고 보자면 상피제가 연고에 얽힌 업무처리를 막기 위함이라면 교육계에만 적용할 일이 아니다. 여타 공직기관에도 모두 적용해야 형평에 맞다. 교육부의 상피제 도입 논리는 결국 이렇게 공격받을 수밖에 없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공직을 수행하는 자가 어디에서 근무하든, 맡은 직책이 무엇이든 법령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면 그만이고, 법령을 어겼을 때 엄격하게 조치하면 된다. 교사가 시험지 유출 등 범죄를 저지르면 철저하게 수사해 적법 처리하면 된다. 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또 다른 법을 덧씌워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법이란 적으면 적을수록, 단순할수록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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