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수난 고리가 지난 박근혜 정권에 이어 문재인 정권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2200만 국민 노후 설계를 책임지고 639조원대 규모의 연기금을 운영하는 막중한 책무를 부여 받은 공적기관 이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국민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지난 23일 무려 9시간 여 동안이나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번 수사는 외관상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캐고 있지만 사실상 검찰의 칼끝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 회계 변경, 유가증권시장 상장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부정 의혹을 겨냥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압수수색은 지난 2016년 이후 3번째다.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압수수색은 모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이뤄졌다. 삼성그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할 당시 국민연금공단이 수 천 억 원의 손실 발생 가능성이 있는데도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에 따른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재벌과 권력의 사금고로 전락했다는 비난에 직면하면서 신뢰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다. 가뜩이나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로 국민들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의 피 같은 돈을 활용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며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 산하 국민연금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국민연금 중기재정전망 보고서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품게 한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국민연금 가입자가 올해부터 5년간 94만명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지난해 약 477만명이었던 국민연금 수급자가 2021년에는 600만명을 넘어서고 2023년에는 665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감소하는 추세가 고착화하는 반면 연금을 받아가는 사람은 점점 늘어난다고 하니 불안감이 커진다. 이대로라면 적립금은 2057년이면 완전 고갈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연금 제도개선 작업은 차일피일 미뤄지고만 있다. 지난 4월 국민연금특위가 개혁안 도출에 실패한 후 관련 논의도 사실상 중단됐다.
검찰의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또 무슨 문제가 튀어나올지 불안하기만 하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 국민연금은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는커녕 정부가 좌지우지해 왔다. 삼성의 후계 구도에 국민연금이 들러리를 섰다는 의혹들은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깨우쳐주기에 충분했다.
국민연금 운용의 유일한 기준은 수익률 제고여야 한다.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이 차단되지 않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는 한 국민연금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정부든 정권이든 국민연금에 손을 대면 큰 코 다친다는 걸 우리는 똑똑히 경험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