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두 달 가까이 ‘조국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달 9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뒤 단 하루도 논란을 비켜간 날이 없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조국 블랙홀’에 빠져 있다. 정치판에도, 신문·방송에도 온통 조국밖에 보이지 않는다. ‘조국 발’ 여야 대치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정기국회도 개점휴업 상태다.
야당은 조국 이슈에 더 고삐를 죌 요량이고, 한국당은 삭발 투쟁까지 불사하며 조국 의혹 규명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26일부터 대정부 질문이 시작됐지만 들리는 소리는 온통 ‘조국’ 뿐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검찰, 교수, 변호사 등 각 전문가 집단은 전문가 집단대로 편이 갈려 서로를 물어뜯는데 혈안이 돼 있다. 단 한 명의 장관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라니 결코 온전한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은 SNS에 올린 글에서 “나라다운 나라에 우리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라가 온통 조국 수렁에 빠져 있으니 ‘나라다운 나라’일 수가 있겠는가.
문제는 정치가 ‘조국 늪’에 허우적거리면서 지역현안이나 경제·민생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요즘 우리 경제는 버려지고 잊힌 자식이 된 것 같다”고 탄식했을까. 지금 국회에는 1만6000건이 넘는 법률안이 쌓여있고, 이중 경제·민생 관련 법안이 4000여 건이라고 한다. 상임위 통과가 임박한 법안이 ‘안건조정’ 신청으로 멈춰 섰거나,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사위에 계류 중인 민생법안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전북지역 현안인 탄소법과 공공의료대학원법, 원전관련 지방세법 등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깜깜무소식이다. 탄소법은 탄소산업진흥원, 국립공공의료대학원법은 공공의대의 설립 근거다. 지방세법은 전북의 방사능 방제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대한 대책 논의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조국 사태에 묻히면서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나 저제나 국회만 쳐다보는 민생 법안들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는 사회 갈등을 녹여내고, 민생을 챙겨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러나 '조국 싸움'만 하다 20대 국회가 문 닫을 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여야의 정치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부메랑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숫자의 우위를 믿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여당과 무조건 발목을 잡고 보자는 야당의 행태는 정권이 바뀌어도 도무지 달라진 게 없다. 오죽하면 이제는 ‘동물 국회’라는 말까지 거리낌 없이 나오겠는가. 무엇보다 ‘역대급 최악 국회’라는 20대 국회에 대한 오명을 걷어내는 게 급선무다. 우리 경제와 민생이 지금 심각한 위기 상태에 빠진 것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위기상황에서 국회가 공전하는 건 국가적 손실이자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