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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찾기 35 : 무성한 숲을 이루어낼, 희망을 간직한 알맹이 찾기

사람은 부끄러운 것은 숨기거나 외면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드러내려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에 어긋난 짓이나 심지어 민족 반역 행위를 하고도 거리낌 없이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철면피들이 득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적 웃음거리를 자처하면서까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것도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축소ㆍ왜곡하려는 세력의 시도 중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고 반성하여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역사 발전의 희망을 갖게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소위 치부, 부끄러운 시기라 하여 들추지 않는 '외면당한 시대'가 있습니다. 특히, 역사 교과서에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고려 말 원 간섭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독재 정권 시기에 중고교를 다녔던 필자는 국정교과서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때의 국사 교과서에 고려는 몽골의 9차에 걸친 침략에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꿋꿋하게 항전했으며, 처인성과 충주성 전투에서 승리하였음을 강조하여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고려와 몽골제국의 화친으로 왕이 강화에서 개경으로 돌아간 후, 삼별초가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가며 저항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드높였음을 역설하고, 충성 '충'자 왕들은 건너뛰었습니다. 이어 공민왕의 쌍성총관부 수복과 원 체제하에서 제후국으로 격하된 관제의 원상회복, 원 간섭 기구였던 정동행성과 몽골풍습 폐지, 권문세족 등 부원배 척결과 신돈이 이끈 전민변정도감 등 반원 자주화와 개혁 정책을 배웠습니다.

고려왕은 앞글자만 따서 “태혜정광 경성목현 덕정문순 인의명신 희강고원 '충' 공우창공”으로 외웠습니다. 따라서 '충'자 왕은 각각으로서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충'으로 시작하는 충렬, 충선, 충숙, 충혜, 충목, 충정의 여섯 왕, 즉 원 간섭기 또는 원의 부마국이었던,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시기가 한편으로는 고려왕조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는 조선왕조 개창의 인적 자원과 사상적 바탕을 형성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원 세조 쿠빌라이의 외손인 충선왕이 생애 대부분을 대도(북경)에서 생활하고, 그가 그곳에 세운 도서관인 '만권당'이 조선 왕조 개창의 사상적 기반인 성리학을 유입시키고, 개혁의 중심 세력인 정몽주, 정도전, 조준 등에 큰 영향을 끼친 이제현과 이색, 안향 등 유학자를 양성해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며 부정부패를 일삼던 부원배들을 낱낱이 드러내어 걸러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당시의 활발한 국제 문화 교류가 조선 초기의 과학 기술과 문화 융성에 한몫을 담당했습니다. 결국, 위기에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희망의 싹을 찾아 키워나가려는 노력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킴을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안철수의원의 탈당 회견으로 제1야당의 앞날에 먹구름이 가득하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의 적전 분열로 국회의원 정수의 2/3인 개헌선까지 내줄 정도로 야권이 참패를 당할 거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매우 타당한 지적입니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수십 년 동안 피땀 흘려 노력하고 싸워 얻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소중한 권리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보았듯이 위기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기회입니다. 위기는 알맹이와 껍데기를 가려내는 ‘키’이자 ‘체’의 역할을 합니다. 위기의 과정을 통해 무리 속에 숨어 있던 정치인들 하나하나의 선택과 행동이 우리들 눈에 쉽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누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인지, 누가 자신의 영달만 꾀하는 정치꾼인지, 누가 이권만을 좇아 헤매는 정치 장사꾼인지, 누가 입으로만 국민을 말하는 인기 영합꾼인지 쉽게 가려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우리 현대사에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되돌리려는 거센 파도가 닥쳐올 때마다 우리 호남은 항상 그것을 돌파하고 막아내는 선장이자 방파제였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들 하나하나의 선택이 현재 우리가 처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쭉정이를 걸러내고 무성한 숲을 이루어낼 희망을 간직한 알맹이를 찾아내는 밝고 맑은 눈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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