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교육/생활
- 지역뉴스
- 기획
- 오피니언
- 사람들
- 포토,영상
- 관심소식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J. M. Keynes)는 화폐를 유동성(流動性ㆍcurrency)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한 마디로 돈은 '돌고 도는(current)'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른바 화폐의 순환가치를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 화폐를 유통시키지 않고 독아지 따위에 묻어두는 것은 화폐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구두쇠는 화폐를 건강한 유통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는 곳에 유폐시키고 있는 사람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가 그렇고 '죄와 벌'에 나오는 전당포 노파가 그러하다.
한자 문화권에서 구두쇠는 수전노(守錢奴)로 통한다. 수전노는 한 마디로 '돈을 사수(死守)하는 흉노(오랑캐)와 같은 사람'이다. 구두쇠의 영어는 'miser'이며, 이는 '비참함(misery)'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결코 좋은 어감이 아니다. 구두쇠에 해당되는 독일어는 'Knicker'이며, 'Knicker'는 본래 '벼룩의 간을 내어 먹는 사람'을 뜻한다. 이와 같이 몇 나라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구두쇠는 하나같이 부정적인 어감을 지니고 있다.
우리말로 구두쇠는 '노랭이'로 불리기도 한다. 구두쇠 또는 노랭이라는 낱말을 만나면 '이기심, 질투심, 의심, 자기합리화, 비굴함' 등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에 비해서 굴비 한 마리를 천정에 걸어 놓고 식사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보았다는 '자린고비'는 유머러스하고 낭만적이며, 결핍이나 아픔을 공유할 줄 아는 인간미를 지닌 인물이다.
서양에서는 "번성할수록 검소해야 한다"라고 자본주의 윤리를 가르치고 있지만, 구두쇠가 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피가 잘 순환해야 건강하듯이 돈이 정의로운 유동성을 유지했을 때 그 사회는 건강하다. 피가 한 곳에 뭉쳐 있으면 세포가 이상 번식하여 암으로 되듯이 돈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서 신체적인 암은 암에 걸린 사람 자신의 목숨만을 담보하지만, 건전하지 못한 돈 때문에 생긴 사회적 암은 그 병리현상이 더 악질적이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흔히 '성공하였다'라 함을, '어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벌었다'라고 오해하는 시각이 있다. 수치 잘 따지고 무엇이든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미국적 자본주의 잣대로도 성공 개념을 그렇게 인식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를,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무소불위의 보도(寶刀) 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돈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돈에 대한 가치전도 현상은 곳곳에서 목도할 수 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자기 영혼마저도 내팽개칠 수 있다는 부끄러움 불감증이 문제다. 정당한 돈벌이가 아닌 한탕주의는 차치하고라도 돈 앞에서 인간적 자존심마저 쉽사리 자동이체 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 문제는 단순히 경제 이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철학을 밑바탕에 두면서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누는 소박한 생활을 구현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체질에 맞지 않은 미국식 거대 자본주의 이론들에 지나치게 함몰된다면 오늘날의 한국적 경제 위기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고질병이 될는지 모른다.
그저 돈에 대한 '구두쇠적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돈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예를 들면, 포도알 하나라도 단맛이 스미게 된 시간과 공간의 얼개를 살피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알 때, "포도알 하나가 돈으로 따지면 얼마일까?"라는 식의 단순한 자본의 시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얼마짜리 포도를 먹어서 배가 부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한 농부의 자연에 대한 성스러운 마음과 눈물겨운 노동의 가치를 몸속에 체화함으로써 포만감을 느끼는 것이다. 구두쇠는 결코 배가 부르는 법이 없다.
차디찬 겨울바람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쓸쓸한 그림자가 어느 잊혀진 뒷골목 담장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숨 가쁘게 달려온 2015년 을미년도 해넘이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있다. 그런 만큼 돌아보아할 것들이 참 많은 세밑이다.
/윤창식 수필가·초당대 교수
Copyrights ⓒ 전북타임즈 & jeonbuktimes.bstor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