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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국면과 러시아의 가치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우리 정부와 언론의 모든 관심은 중국의 선택에 집중돼 있다. 포괄적이고 강도 높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도출되려면 중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과연 중국만 설득하면 다 되는 것일까. 유엔 안보리는 비토권을 가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이 주축이다. 이들 나라 중 어느 한 곳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어떤 안건도 통과될 수 없다. 최소한 기권이라도 얻어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망설이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그토록 자신들이 반대해온 핵실험을 사전 통보도 없이 감행한 북한이 원망스럽고 밉살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시점에서 북한이 지닌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가치 역시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더욱이 북 핵실험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도입 논의가 남한 내에서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고, B-52와 같은 미군의 전략 무기들의 한반도 전개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이것들이 단지 북한을 겁주기 위한 무력시위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오히려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군사 공조의 완벽한 복원으로 인식할 개연성이 크다. 중국이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선뜻 찬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중국을 제외하면 모두 대북 제재에 적극 찬성할까. 어찌 보면 중국과 공조를 취하거나 중국보다 더 강경하게 대북 제재에 반대할 나라는 바로 러시아일 공산이 크다. 크림 반도 합병 이후 미국과 유럽 연합(EU)의 경제 제재, 그와 맞물린 유가 폭락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러시아는 지금 세계 패권국 미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견고한 리더십은 그의 대미 강경 노선의 강력한 동인이 되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90%를 넘어선다고 한다. 지금도 시리아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은 푸틴의 아사드 정권 후원이다. 이슬람 국가(IS) 퇴치 전략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러시아의 시리아전 개입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미국이다.


이런 러시아와 북한이 가까워진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인 2014년부터 북러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됐다. 전통적인 반미 국가인 북한과 미국 주도의 서방으로부터 강력한 경제 제재에 직면하게 된 러시아는 동병상련의 '반서방 연대'를 구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2013년 3차 북 핵실험 이후 최대 후원국인 중국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져 고립무원이었던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각을 세운 푸틴의 러시아가 더없이 반가웠을 것이다. 더구나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북핵 6자회담 참여국이다. 그러지 않아도 대중(對中) 의존도를 낮추려 했던 북한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러시아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원군인 셈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전략에 맞서 '신동방 정책'으로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던 푸틴 입장에서도 북한은 주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지난 2013년에는 연방 정부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공히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북한은 연해주와 나선 특구 지역에서의 경제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이해가 완벽히 들어 맞고 있는 것이 북한과 러시아인 셈이다.


이런 양국 관계는 지난해 북한 언론 매체의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언급 횟수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연합뉴스가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중앙 TV 등 주요 6개 매체의 시 주석 언급 횟수를 조사한 결과 1년간 단 여섯 차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름 대신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이라고 언급한 기사까지 포함해도 모두 10건에 불과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북한식 발음은 울라지미르 뿌찐)을 언급한 횟수는 150여 차례에 달했다. 이런 '북러 밀월'이 작금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논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북핵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의 '북핵 불용' 입장이 이번 유엔 결의안에 제대로 담기길 바란다. 또 그렇게 되도록 우리의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100% 열매를 맺기는 어려운 것이 국제 관계의 현실이다. 북러 관계 못지않게 신(新)밀월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 중러 관계다. 전통적인 친북 성향의 이들 두 나라가 이번 안보리 논의에서 밀접하게 공조할지, 또는 각개 행동을 할지는 북핵 4차 실험 이후 동북아 역학 구도 재편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그동안 우리 정부의 대러 외교다. 우크라이나 사태나 시리아 문제가 우리와 무관한 것일 수는 없지만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이슈임은 분명하다. 다자 외교적으로는 서방에 일정 부분 동조할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곤궁한 처지에 놓인 러시아와 좀 더 끈끈한 양자외교를 발전시킬 호기이기도 했다. 더구나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시베리아와 한반도 가스관 연결 사업 등 유라시아 프로젝트는 현 정부 외교전략의 우선순위에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도 적극적으로 환영한 사업들이다. 통일 외교를 내세워 다자외교와 양자외교를 적절히 분리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이유다. 우리는 말로는 미ㆍ중에 지나치게 편중되지 않는 균형외교와 통일 기반 조성 외교를 말한다. 하지만 그 실천력은 낙제점이다. 이번 북핵 국면을 통해 러시아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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