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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섬(minus-sum) 사회' 극복을 위하여

이외수는 '12월'이라는 시에서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그대 더욱 목메이라고/길이 막힌다"고 노래하고 있다. 무릇 문학일반이 마이너리티들을 위한 '주변부 담론'이라지만, "그리움도 죄가 되다니"(!) 시의 구절이 참으로 절박하다. 
지금 한반도에는 폭설을 동반한 맹추위가 엄습하고 있다. 첨단과학과 눈부신 기술문명으로도 어쩌지 못할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능력은 한낱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기실, 이번 추위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구가 자꾸 더워져 북극의 얼음이 예상보다 빠르게 녹으면서 엄청나게 찬 공기가 북반부로 내려오면서 생긴 현상이란다. 어쩌면 나 자신도 '욕망의 과잉'으로 인하여 지구온난화에 일조한 것 아닌가 싶어 두려워지기도 한다. 
영국의 시회학자 스펜서는 "인간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삶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든 게 아니었을까. 세상이 '낙원'으로만 남아 있었다면 굳이 종교를 만들 필요가 없었으리라. 이는 말하기조차 민망한 '헬조선'의 하릴없는 기복적(祈福的)인 '종교 과잉'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꼴찌이고 스트레스지수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교역국의 경제규모를 가졌는데도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물론 여기에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원인들이 다양하게 얽혀 있겠지만, 결국은 자본의 힘에 대한 그릇된 맹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돈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부질없는 탐욕을 배태하고 비정상적인 정신적 DNA가 몸에 쌓여 사회적 괴물을 낳는 것이 아닐까. 자기 자식을 토막내어 냉장고에 넣어놓고 부부가 함께 치킨을 시켜 (쳐)먹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두렵지 아니한가!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고 마스크를 씌워 일회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은 현장검증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왜 이런 '인간괴물'이 탄생한 걸까? 우리가 달리 '문화인(文化人)'이 아닌 것이다. 글을 깨우치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곧 문화인일 터인데, 화려한 달변과 그럴싸한 미사여구와 엄청난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이 때에 따라서는 전혀 문화적이지 못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일부 정치가들의 '말 바꾸기 논란'을 두고 하는 말만은 아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문맹인(文盲人)이 훨씬 진실한지도 모른다.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는《침묵의 세계》(Die Welt des Schweigens)에서 "살아있는 침묵을 갖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서 침묵을 되찾는다."고 했다. 
이른바 '말의 성찬'은 일시적으로 정신적 포만감을 가져다줄지 몰라도 상대방(혹은 '을')의 말이나 생각을 아랑곳하지 않는 '갑의 식탁'이 되어버리기 쉽다. '말의 과식'은 음식의 과식 못지않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동맥경화를 초래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바드대학 교재로도 사용된 '대중경제론'을 통해 '민중경제'의 가치를 설파한 바 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구멍가게나 미장원 같은 골목길 상권을 보호하고 중소기업들이 서로 상생적인 고리를 형성하여 선순환적인 경제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건전하고 안정적인 경제사회가 이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인간의 터무니없는 탐욕이 문제다. 얼마 전 별세한 신영복(申榮福)선생은 21세기 자본의 오만과 무지에 대한 성찰을 담은 저서《더불어숲》에서 "나무들이 모여 우람한 역사의 숲을 만든다."고 했다. '제로섬 사회'(Zero-sum Society)의 저자 레스터 더로(Lester C. Thurow)는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의 합계가 영이 되는 것을 '제로섬게임'이라 칭하고 그러한 게임이 횡행하는 사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회는 승자와 패자 간의 치열한 경쟁만이 지속될 뿐이고,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사회가 퇴보되는 '마이너스섬 사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
 적설과 추위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 어쩌면 누군가의 눈물이 바람 따라 떠돌다가 이 땅에 눈이 되어 내리는지도 모른다. 혹여 갈길 잃은 눈바람이 가난한 골목길에 서성이거나 그대의 문고리라도 흔든다면 그냥 보내지 말 일이다. 이 땅의 모든 눈 덮인 곳에서 서로 따뜻한 '마음의 음식'을 나누는 세상이 올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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