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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우리는 고난속에서도 웅비(雄飛)하였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국운이 융성하고 민족사에 영광이 깃든 때에는 언제나 민족의 힘이 밖으로 뻗어나간 반면, 국운이 쇠퇴하고 역사의 불운을 맞이한 때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대외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등한시 하고 안으로 문을 닫고 내분으로 민족의 역량을 소진할 때였다.
고구려가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해서 그 명성을 동아시아 전역에 날렸던 것은 민족의 국운이 대외로 힘차게 뻗어나간 것이다. 반면에 조선 말기 우리나라는 힘이 밖으로 팽창하지 못하고 내분과 권력대립으로 국력을 소모시킨 사례는 우리의 역량을 스스로 소진한 것은 안타까운 역사의 한 장이었다.
고구려는 고조선 지역에 침투해 온 한족을 몰아내고 요하의 동쪽지역까지 장악하여 우리 민족의 생활권을 확보함과 동시에 대륙으로 뻗어가는 민족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백제와 신라의 성립과 발전을 가능케 하고 그 후 발해로 하여금 만주지역을 계속 지배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삼국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에도 민족통일의 길은 아직 요원하였다. 신라의 통일의지는 민족 전체를 화합과 통합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였고 영토가 축소되는 반도의 통일에 그쳤다.
 발해의 대륙수복 의지도 고구려인의 발자취를 되밟고 있었으나 영토를 회복하거나 확장하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민족사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고려였다. 남,북국 시대의 뼈아픈 민족분단 상황을 자각한 고려는 신라의 영토와 문화 전통 속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머무르지 않고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함으로써 민족통일과 번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부단한 북방민족의 침략을 슬기로서 극복하고 영토 확장을 실현하였다.
  고려 말의 민족사적 위기를 극복하고 탄생한 조선왕조는 건국 초부터 북진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여 세종에 이르러 오늘날의 영토를 확보하고 문화를 새롭게 꽃피움으로서 오늘날 우리 민족의 유,무형의 기틀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내,외의 도전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국권상실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맞아하게 되었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민족의 혼 즉, 우리의 몸속에 흐르는 기질과 DNA는 무엇인가. 광활한 만주 땅에서 그 태동에서부터 온갖 시련을 겪은 고구려는 수많은 북방민족과 중국세력을 물리치면서 직면하는 모든 국난을 훌륭하게 극복하였다.
그 중에서도 을지문득 장군의 살수대첩과 당나라 태종과 혈전을 그치면서 승리를 거둔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 전투는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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