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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전국에서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치루어 지게 된다
오는 4월 13일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연령을 제외한 나머지 그 누구나 참여하여 치루는 날이다.
이번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중차대한 대국민의 중요한 행사이며 꽃의 결실을 맺는 일이다.
이 글을 쓰는 본지 기자는 먼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그 많은 자연속에 아니 고진 바람속에서도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로 날라줘야 수정(수분)하게 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는 하늘에서의 날게 짖을 창공을 나르고 있는 새이거나 곤충이거나 바람이 일거나 물이 제일 중요한 요인이 아닐는지. 그런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만이 꽃이 결실을 맺게 된다.
이를 선거판에 대입해 보면 이런 과정으로 설명이 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가 “무엇인가”로 유권자의 표심을 흔들어야 만이 된다. 여기서 누군가는 입후보자 무엇인가는 그의 역량(능력)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 될 수 있다고 본다. 선거가 제대로 된 꽃이 되는 데 있어 누군가와 무엇인가 중 어느 게 더 중요하느냐는 것이다
대개의 선거형태를 볼 때 해답은 아무래도 “누군가“에 더 쏠리는 것 같다.
정당들은 선거판에 첫발을 들인 이들에게 정치신인이라는 인식표를 붙여 일정 비율의 가점을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도 그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이런 가점들이 과연 누군가의 프리미엄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어깨띠를 두르고 아무리 열심히 표밭을 헤매고 다년도 누군가의 인지도 벽을 넘어서기가 너무 어렵다는 신인들의 하소연에서 어렴풋이 짐작되고 있다.
그들은 나름의 특출한 그 무엇인가를 아무리 홍보해도“누군가”라는 거대한 장벽에 막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고 있는 게 현재의 정치이며 현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일화가 떠오르고 있는 대목을 이야기 하려한다. 석가와 제자가 나눴다는 대화를 풀이 해본다.
석가의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도 극락에 가려면 중생들이 모두 하는 것처럼 강가(ganga:인도 갠지스 강)의 물에서 목욕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스승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제자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강가의 물고기들은 모두 다 극락에 가 있지 않겠는가? 하며 말을 건넸다 한다.
그렇다 이 일화를 언급한 것은 자기 주도적 삶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석가모니의 답이 아니라 제자의 질문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중생들이 내세극복을 위해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이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 듯 한 모습을 보이는 제자의 심리에 주목한다.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극락을 꿈꾸는 중생들을 “무엇인가”보다“누군가”에 더 매달리는 유권자라고 한다면 나도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왠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는 부류라고 하지 않겠는 가?
전제군주시대를 거쳐 백성이 주인(민주)된 시대를 맞은 지도 100년이 다돼 간다. 이제 선거에서 선택의 잣대를 들이대기 앞서“누군가”와“무엇이가”의 균형추를 맞출 때가 됐다. 그가 쌓은 관록과 경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상과 비젼. 공약을 포함한 무엇인가도 살펴 인물평가의 무게중심을 맞추는 관전법이 필요하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도입된 초기보다 유권자들의 민도가 당시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숙됐다고 하면 그 민도의 지향점은 “그와 그가 생각하는 것”을 융합한 것이라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꽃이 결실하게 할 책임을 가진 유권자들의 역할이다. 작금의 여러 선거판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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