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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의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하기 전까지 미국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3국이 일으킨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일본이 프랑스령인 인도차이나 남부를 불법으로 점령하자 미국은 즉각 미국내 일본 자산을 동결하고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금지하였다. 이에 반발한 일본은 급기야 진주만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사흘 뒤 독일과 이탈리아도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였고, 이들 3개국에 대항하여 1942년 1월 1일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26개국이 연합함으로 2차 세계대전이 되었다.
1943년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실각,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과 8월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20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이끄는 강대국이 되었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여로 패망한 일본은 전쟁으로 인하여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엔화의 가치는 전쟁 전보다 1/100 수준으로 떨어졌다. 먹을 것이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고 경제를 복구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던 중 한국전쟁의 발발은 군수물자 생산과 무기 수리 등의 주문이 쇄도함으로 일본 산업은 미국의 하청 군수공장과 같았다.
일본은 3년 동안 23억 7천만 달러의 매상을 올렸는데 그 당시로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일본 경제 발전은 한국전쟁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한국의 많은 희생 위에 발전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동란으로 피폐화된 한국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1962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세우고 산업 근대화 정책을 위하여 노력하던 중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케 되었다.
1964년 태권도 교관들과 함께 비전투 부대를 시작으로 공병, 운송 및 자체 경비병력 등의 건설지원단이 파견되었고, 이후로 약 5만 여명의 병력이 1973년까지 파병되었다.
파병의 대가로 한국 정부는 국군의 전력 증강과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을 제공받았고, 파병 군인들의 송금, 군수품 수출, 건설업체의 베트남 진출 등에 의해 외화를 벌어들임으로 경제적 특수효과를 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베트남 참전은 결과적으로 적잖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지만 5000여 명이 넘은 젊은이가 희생되었고, 베트남 양민학살, 참전 용사들의 고엽제 후유증, 용병논란 등 여러 문제점을 남기게 되었다.
북한이 UN의 제재를 무시하고 핵 개발뿐만 아니라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시험 등 무력 도발을 계속함으로 미국이 북한 선제타격을 거론하고 있다.
선제 타격으로 북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방법이 없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확전이 되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미국이 한반도 영토에서 무력 사용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미국 국민에게는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치명적이 되기 때문에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이 우리의 동맹국이고, 미국의 도움으로 오늘의 번영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독립된 자주 국가이기에 우리 의사와 반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을 비판하면 종북세력이거나 좌파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주변국은 크나 큰 이득을 보겠지만 전쟁 당사자는 비참해지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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