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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韓服)의 유래


 

한복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민족 고유의 의복으로 우리나라의 전통복이며 민속복이다.

한복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 고유 민족의 뿌리를 이해하고 급 변화하는 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전통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복의 형태를 바로 알아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입고 있는 한복은 언제부터 정착된 것일까?

우리 조상들이 입었던 옷들이 유물로 남아 있다면 그것을 보고 알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유기체인 복식(服飾)은 부식되어 공기 중에 사라지고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도 가장 근간을 이루는 시대의 유물은 조선시대 말기 이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간혹 어느 문중의 묘 이장을 통해 발견되는 출토유물들이 기적적으로 썩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서 우리는 운 좋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 유물(古 遺物)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것도 조선시대 이전의 것은 아니며 아주 드문 일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우리는 한복의 유래를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다만, 고구려 고분벽화(4∼6세기)를 통하여 한국복식의 원류는 북방알타이계에서 찾을 수 있으며, 신라·백제 유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복식의 원류를 이해하는데 가장 오래된 자료인 고구려 고분 벽화는 위치상으로 북한과 중국 일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어렵긴 하지만 여러 연구기관들에 의해서 벽화의 많은 부분들이 알져지게 되었고, 알아보기 힘든 그림들은 영상으로 복원이 되어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다.

 중국 둥베이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에 위치한 무용총의 벽화를 살펴보면 상대사회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와 의복의 형태를 이해할 수 있다. 수렵과 채집을 하는 농경문화로 의복 또한 생활문화에 기반을 둔 기능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남자들은 수렵을 하기 위해 말을 타고 산악지형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저고리에 홀태바지(바지통이 좁은 형태)를 입고 있으며 저고리의 길이는 지금보다 훨씬 긴 엉덩이를 덮는 길이이고 허리띠를 매고 있다. 여자들은 이 시대에 남자들과 같은 형태의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의례용으로 치마를 입었던 것으로 벽화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백제와 신라 역시 고구려의 복식과 유사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결국 상대사회의 기본복식의 구조는 남자는 저고리, 바지였으며 여자는 저고리, 치마였고 남녀 모두 외출을 하거나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기다란 포(袍)를 걸쳐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습은 현재 우리의 한복과 비슷한 모습이긴 하나 저고리의 길이라든가 허리에 띠를 매어서 입는 형태 등이 조금은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이템의 구조로 살펴볼 때 그 기본구조는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길이가 길어서 허리에 띠를 매어서 입었던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실존한 조반의 부인(1342-1401) 초상화를 통해 살펴보면 여자 저고리의 길이가 전 시대에 비해 조금 짧아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전기의 안동 김씨 수의를 통해 여자저고리의 형태가 확실하게 허리길이 정도로 짧아져 있음을 알 수 있고 허리띠는 없어지고 가슴 부근에는 고름을 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조선 중기를 거쳐 후기에 이르기까지 유물을 통해 살펴보면 여자저고리의 길이는 가슴 밑으로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선 말기에는 가슴도 체 가리지 못할 정도로 매우 짧아졌다. 이것은 저고리를 통해 조선시대 유행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이야기 해보기로 하겠다. 짧은 저고리와 꼭 끼는 소매는 여인의 실루엣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하여 부정의 시선도 있었지만 시대의 유행을 거스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후 유행은 다시 변하여 국말(國末) 이후 개화기에는 저고리의 길이가 길어지고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한복도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저고리의 길이가 가슴을 덮을 정도로 길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은 통치마가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우리는 흔히 계량치마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현재 남자 한복은 바지, 저고리와 함께 조끼, 마고자를 입는데 조끼는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등장한 양복의 조끼가 한복에 적용된 사례이고, 마고자는 흥선대원군이 만주 보정부에서의 유거생활에서 풀려나 귀국할 때(1887년) 만주사람의 마괘를 입고 돌아와 이것이 변형되어 널리 착용 되었다(김영숙, 미술문화, 1998)고 한다.

일제시대를 거쳐 6.25를 경험하게 되면서 우리 민족은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하게 되었고 기존의 전통한복에 대한 스타일이 정착화 되는 계기가 되면서 현재 한복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랜 시대를 거쳐 현재에 오기까지 우리의 한복은 전통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시대 상황에 맞도록 부피감이나 길이감 등의 변화를 가지면서 그 형태를 고수해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서구화된 생활방식으로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 결과 우리는 한복을 일생에 특별한 날(결혼식, 돌잔치, 칠순 및 팔순연 등)에만 입는 것으로 여기고 멀리하는 특수복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가까운 주변의 일본만 하더라도 자국의 전통복인 기모노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하여 가족이 모두 기모노를 입고 가족모임을 하고 명절을 보낸다고 하는 것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한복에 대한 의식 수준이 조금은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전주는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관광지를 방문한 젊은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거리를 거니는 문화체험이 성행하고 있어서 전통문화에 대한 계승의 의지가 엿보이며 이를 통해 한류문화를 이해하는 초석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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