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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雲寺(선운사) 동백꽃


 

만물이 생동하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驚蟄]이 지났다. 아직도 조석으로 찬바람은 매섭지만 그래도 낮 시간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간혹 점심식사 후 몸이 나른하고 피로를 느끼는 것이 벌써 봄을 타는 춘곤증이 찾아온 것 같다. 

뉴스를 보니 섬진강변에 위치한 광양의 매화마을은 요즈음 한참 축제중이다고 한다. 우리 지방보다 남쪽 지역이다 보니 벌써 매화꽃이 만발하였으리라. 여행업계의 전략인지는 몰라도 언제부터 매화꽃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되어버린 것 같다. 

 

3월이지만 이달 초에 하얀 눈이 내렸다. 아침 출근길에 차를 덮어버린 눈을 치우느라 한참을 끙끙대면서 바삐 서둘렀다. 봄이 왔다가 가버렸나 생각될 정도로 눈이 미웠지만 계절의 변화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청사 주변에 심어놓은 동백과 목련이 꽃봉오리를 맺고 있으니 말이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매화꽃이라 하지만 겨울과 봄에 피는 동백꽃은  찬찬히 들여다보면 너무 사랑스럽다. 요즈음은 길가의 가로수나 아파트 정원에 심어져 있어 흔히 볼 수 있지만 선운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고창은 군화(郡花)가 동백꽃이다. 고창의 충·효·열(忠·孝·烈)로 인내와 새 인재 배출을 상징하며 동백꽃을 군화로 지정한 것이다.   

 

동백나무 잎은 어긋나고 톱니가 있으며 두껍고 광택이 있다. 꽃은 가지 끝 또는 잎겨드랑이에 나고 붉은색으로 핀다. 흰색 꽃이 피는 것도 있으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추백(秋栢), 동백(冬栢), 춘백(春栢)으로 부르기도 한다. 

옛날 욕심 많은 임금이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왕위를 물려주어야 할 동생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동생은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자기 가슴을 칼로 찔러 목숨을 끊었고 피를 흘리면서 동백나무로 변했으며 이를 보고 있던 동생의 아들은 동백나무 가지에 집을 짓고 사는 동백새가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볼수록 예쁘지만 슬프고 한이 서린 나무에서 피는 꽃 같다.

 


다른 유래도 있다. 한 섬 마을에 서로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다. 육지에 볼 일이 있어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배를 기다리다 그 그리움이 병이 된 아내가 시름시름 않다가 죽게 되었다. 아내는 죽기 전 '내가 죽는다면 돌아오는 남편을 볼 수 있는 곳에 묻어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녀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슬퍼하며 그녀의 유언에 따라 배가 잘 보이는 곳에 묻어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죽고 10일 후 남편이 배를 타고 돌아왔다. 아내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아내의 무덤가에 가서 한없이 슬피 울었고 매일매일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무덤에서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동백나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동백 군락지도 많고 만개하는 시기도 조금씩 다르다. 진도 운림산방 뒤편의 동백나무 고목 군락, 여수 오동도, 부산 동백섬, 거제 지심도, 통영 장사도, 서천 동백정이 유명하다.

고등학교 시절 국토지리 선생님은 동백꽃의 북방 한계선을 고창 선운사라고 하였고 간혹 시험문제를 내기도 하였다. 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한반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가르침에 자주 선운사를 찾았다. 서천 동백정의 군락지를 보고나서는 그게 아님을 알았지만 봄에 찾은 선운사 대웅전 뒤편에 핀 동백꽃은 정말 장관이었다.

선운사의 동백숲은 수령 500여년의 동백나무 3,000주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아 196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현재는 선운사 경내와 동백나무 숲 사이에 철망으로 담장이 쳐 있어 숲 안으로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보기만 해도 멋지다. 

 

우리고장 출신으로 오랜 교편생활과 농촌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뛰어난 작품을 창작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선운사 동백꽃」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고 한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실연을 체험하면서 느꼈던 내면의 고통을 한 겨울 선운사의 동백꽃에 투영시키고자 하였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시인은 고창 선운사의 아름다움과 붉은 동백꽃을 소재로 고통과 갈등의 진폭을 너무 멋지게 함축적으로 드러낸 것 같다. 쎄시봉(C'est si bon) 가수 송창식은 한때 선운사의 동백꽃을 주제로 노래를 불렀다.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움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 ~


아마 한번 정도는 꽃샘추위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기지개를 활짝 펴자. 주위에 있는 누구라도 봄나들이 가자고 졸라보자. 여자에게 버림받지 않았어도 나를 두고 가신님이 없어도 선운사 동백꽃은 반길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경내를 걷는 뒷모습을 스케치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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