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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대학교 생명산업과학대 교수 백소현>
주부들의 장바구니가 요즘처럼 가벼운 적이 있을까? 예전엔 특정 채소류의 가격이 널뛰기를 하였으나, 요즘은 농축산물에서 가공식품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손이 가질 않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글로벌 보릿고개’, ‘애그플레이션’(농업+인플레이션: 농산물로 인하여 물가가 오르는 현상), ‘그레인 쇼크(Grain Shock)’ 등 수년전 만들어진 이들 농업 관련 신조어는 이젠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글로벌 보릿고개’란 우리나라가 60∼70년대 한참 배고프던 시절을 비유하여, 전 세계적인 식량파동이 도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이고, ‘그레인 쇼크’ 역시 하루가 지나면 기록을 경신하듯 치솟는 기름 가격의 ‘오일쇼크’ 파장에 버금가는 세계 곡물(Grain)가의 급상승에 따른 불안감으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이런 현상은 급작스럽게 나타난 걸까? 곧 진정되고 해결이 되기는 할 것인가?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낙관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금년 2월 국제 곡물가격은 전년도 동월 대비하여 밀은 3.5%의 가격 하락을 나타내었으나, 옥수수는 1.7%, 콩은 17.8%의 가격 상승을 나타내었다.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이 세계 최하위권으로 쌀, 밀, 콩, 옥수수, 보리 등의 곡물을 연간 2,000만톤 가량 소비하는데, 이 중 30%인 600만톤 정도만 국내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70%는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세계 곡물시장의 가격변동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우리나라는 향후 곡물 관련제품의 가격 안정을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그저 국제 곡물가격이 안정적이기 만을 기도해야 하는 실정이다.
곡물을 무기화하는 자원 민족주의의 확산
이러한 국제곡물가격 변동의 주요인은 수요와 공급의 불안정에서 유발된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중국, 인도 등 신흥 성장국의 경제발전과 소득증대가 육류 소비증가로 이어져 사료용 곡물의 급격한 수요를 수반하였고, 오일가격 상승 및 화석연료 고갈에 따른 대체연료로 주목받는 바이오연료 생산에 사료용 옥수수를 사용되면서 수요가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지구온난화 등으로 최근 세계적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고, 이러한 기상이변은 곡물 생산량을 급격하게 감소시켰다. 2008년 유럽은 가뭄, 홍수, 냉해로 인한 기상재해로 곡물생산이 현격하게 줄었는데, 이러한 ‘그레인 쇼크’에 러시아는 보리, 밀 등에 30%가 넘는 수출관세를 부과하여 수출을 규제하였고, 중국도 쌀, 옥수수, 밀가루 등에 수출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남미국가들도 옥수수, 쌀, 소고기 등 자국 농산물을 제한적으로 수출하는 등 곡물을 무기화하는 자원 민족주의가 확산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주요 선진국의 곡물자급률은 어떠할까? 대부분의 OECD 선진국들은 100%를 상회하는 곡물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다(프랑스 329%, 미국 125%, 캐나다 113%, 영국 125%, 독일 147%). 하지만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4.0%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며 이중 쌀을 제외할 경우에는 3.4%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웃 일본의 곡물자급률은 40% 내외이지만, 일본은 식량안보를 위해 목표치를 법제화하여 향후 45%로 향상시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이렇듯 OECD 선진국들 모두가 식량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국가기관에서 직접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남평야를 연중 푸르게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세계정세에 따른 식량 무기화와 잦은 이상기후에 의한 주요 곡물 수출국의 곡물생산 불확실성 속에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살아야만 하는가? 총성 없는 식량전쟁 속에서 충무공의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라는 글귀에서 이들 우려를 조금이라도 해소 시킬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호남의 경작지는 전국의 약 44%로 그중 63% 이상이 논으로 벼 뿐 만 아니라 보리, 밀, 사료작물 재배가 가능하여 우리 국민 절반의 식량을 책임지고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따라서 금년 가을부터라도 이곳 호남평야를 연중 푸르게 만들어 보자. 늘어나고 있는 겨울철 유휴 농경지에 밀, 보리, 사료작물 등의 재배면적을 두 배 가까이 늘려 삭막한 겨울철에 광활한 초원을 만들어 보자. 그러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전 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밀, 옥수수 등의 흉작에 의한 ‘그레인 쇼크’를 조금은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좁은 농경지이지만 이용 효율을 적극적으로 개선한다면 일정양은 자급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세계 곡물 가격의 상승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우리 역사의 치욕스러운 사건중의 하나인 ‘삼전도의 굴욕’을 21세기에 또다시 반복하지는 않아야 한다. 따라서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사먹지 못하는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행여 닥칠지 모를 ‘글로벌 보릿고개’를 대비하기 위하여 농민, 농업 관계자와 정부기관이 함께할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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